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711
한자 戱曲
영어음역 Huigok
영어의미역 Drama
이칭/별칭 드라마,각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기우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극 대본.

[개설]

고창을 소재로 한 희곡 작품이나 고창 출신 극작가는 찾을 수가 없다. 신재효·김소희·진채선 등 고창을 상징하는 문화계 인물들을 테마로 한 작품은 전통 연희를 매체로 하고 있으며, 1970년대 후반 극작가 허규가 신재효진채선의 삶과 사랑을 소재로 한 희곡 「광대가」를 발표했는데, 이 역시 오광대·사당패·말뚝이 등의 연희가 더 강조되는 작품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희곡 중에서 미당 서정주가 언급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나, 그것이 고창을 소재로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고창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 전국 최초로 군(郡) 단위 소인극이 시작된 곳이며, 1970년대 중반 아동극이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다. 고창청년회는 1921년 1월 7일 ‘청춘의 희비극’을 소재로 첫 공연을 올렸으며, 1923년 「모루히네 중독자의 후회 일」 등의 여러 작품을 공연하였다.

[고창 희곡의 변천]

1921년 3·1운동 직후 전국 각처에서 청년 단체들이 결성되면서 이들이 주도하는 소인극 운동이 확산되었다. 소인극은 비직업적·비전문적인 자립 연극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직업 개념과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 취미 활동 일환으로써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특성상 이 시기 청년 단체들에 의해 형성된 소인극은 사회 운동의 한 방법으로써 이루어진 연극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고창청년회의 소인극은 1921년 1월 7일 첫 무대에 올려졌다. 신년 연회의 연회장에서 ‘남녀노유 수백 명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거행된 이 소인극은 ‘청춘의 희비극’을 소재로 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유행했던 청춘 애정물로 추측된다. 이들의 소인극은 소기의 목적을 동반한 조직적인 단체라기보다는 연기 등에 재주가 있는 몇몇의 열혈 청년으로 구성된 단순히 신년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소박한 수준의 단체였다.

하지만 이들의 공연은 인근 지역에 소인극 운동을 자극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고창의 소인극은 자생적인 지역 연극의 뿌리를 형성하면서 전라북도의 근대 연극을 태동시킨 주요 동력이 되었다. 고창청년회의 소인극을 계기로 1921년 전라북도 도내 5개 청년 단체와 1개의 청년 종교 단체가 주도하는 소인극이 익산, 김제, 전주 등에서 생겨났다. 이는 문화 선전과 풍속 개량, 야학 유지비 충당 등을 목적으로 흥행되었기 때문이다.

고창청년회는 1923년 11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동안 「모루히네 중독자의 후회 일」과 「희극 우슴거리」, 「이세종의 바이올린 연주」 등의 계몽극을 공연하였다. 특히 「모루히네 중독자의 후회 일」은 모르핀[모루히네] 중독의 심각성을 고발하여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는 소인극을 통해 당시의 사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교육적인 계몽극의 성격을 넘어 일제의 왜곡된 식민지 정책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르핀은 아편의 일종으로 당시 경성 시내에만 4천여 명의 중독자가 있었고, 전주 시내에도 1천여 명의 중독자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조선총독부는 방관적인 입장만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생적인 소인극 단체가 이를 문제 삼아 공연했다는 것은 애국·애족의 차원에서 민족 계몽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창 희곡의 배경]

고창에서 전국 최초로 소인극 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고창은 경제적·문화적 기반이 일찍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고창은 전라북도 서남 지역의 끝에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전라남도·광주 등과 문화적 교류가 쉬웠다. 반면에 행정적으로는 전라북도 권역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시세에 민감할 수 있었다. 또 농토의 지주나 염전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많아 일찍부터 경제적 기반이 형성될 수 있었다.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의 고장이라는 문화적 자긍심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황]

1970년대 중반 전라북도의 아동극은 고창과 전주, 완주, 순창 등에서 활발했다. 특히 1975년 전라북도 고창교육지원청이 마련한 학부모·교사·학생 삼위일체의 ‘교육가족 멸공예술제’에서는 고창 관내 현직 교사들의 모임인 ‘교단극회’가 유치진 작, 이석우 편극·연출의 「청춘은 조국과 더불어」를 공연했으며, 고창국민학교[현재 고창초등학교] 아동극부가 최배현·김수자 교사의 지도로 「6·25 열차여행」을 열연해 3천여 명의 관객으로부터 열띤 찬사를 받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