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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695
한자 昌寧曺氏
영어음역 Changnyeong Jossi
영어의미역 Changnyeong J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고창읍 덕정리|성송면 괴치리
입향시기/연도 1500년대|1700년대
성씨시조 조계룡
입향시조 조침|조명도|조홍현|조호인|조후천

[정의]

조계룡을 시조로 하고 조침·조명도·조홍현·조호인·조후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창녕조씨는 태자태사(太子太師)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창녕조씨는 청간공파(淸澗公派),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 양평공파(襄平公派), 충정공파(忠貞公派) 등이 알려져 있다.

[입향경위]

창녕조씨 고창군 입향조 조침(曺琛)은 청간공 조서(曺庶)의 현손으로 1487년(성종 18) 인천 학산(鶴山)에서 태어났다.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조침의 사위 박민헌(朴民獻)이 고창을 피난지로 권유하여 고창읍 석정리(石汀里)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조명도(曺命燾)는 창성부원군 조계룡의 24대손이자 밀직사를 지낸 조준(曺浚)의 6대손으로 1635년(인조 13)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芬香里)에서 태어났다. 중년에 가세가 기울자 노비 30여 명을 데리고 해리면 송산리(松山里)에 있던 처가인 창녕성씨 참봉 성진철(成振哲)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처가에서 노비를 다 거느릴 수가 없어 풀어 주었다.

그런데 안만순(安萬淳)이란 노비가 고창읍 덕정리(德井里)에 모아 놓은 재산 가운데 논 14두락을 주겠으니 옮겨 오라고 제의하매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매년 14두락분의 추수를 상납하는 정성에 못 이겨 이거하게 되었다. 지금도 14두락의 논을 납상배미라고 하며 안만순을 기리는 단갈(短碣)이 서 있다.

조홍현(曺弘賢)은 창성부원군 조계룡의 18대손이자 충순위 조국경(曺國卿)의 6대손으로 1744년(영조 20) 성송면 괴치리 동복에서 태어났다. 형 조홍성(曺弘聖)이 고창읍 덕정리에 사는 조한진(曺翰鎭)의 양자가 되자 형을 따라 1794년(정조 18)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조호인(曺好仁)은 양평공(襄平公) 조익청(曺益淸)의 9대손으로 선조 때 아우 조호의(曺好義)와 아들 조익령(曺益齡)·조익수(曺益壽)를 데리고 서울에서 흥덕면으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조후천(曺後天)은 충정공 조상치(曺尙治)의 10대손으로 1712년(숙종 38)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종동(宗洞)에서 태어났다. 당쟁이 격화되자 시사(時事)를 개탄하여 아산면 반암리 호암(壺岩)에 은거하였다가 아산면 남산리(南山里)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조침의 후손들이 고창읍 석정리에 19대째 세거하고 있으며, 이 밖에 고창읍 월암리·월산리·성두리 등지에도 살고 있다. 조홍현의 후손들이 고창읍 덕정리, 성송면 괴치리 동복에 살고 있다. 조호인의 후손들이 부안면 등지에 살고 있다. 조후천의 후손들이 아산면 남산리, 성내면 신대리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창녕조씨는 총 267가구에 694명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조** 입향경위: 조침(曺琛)은 인천 학산(鶴山)이 아닌 인천 계산(鷄山)입니다. 수정요청합니다. 2017.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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