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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58
한자 高敞邑城
영어공식명칭 Gochangeupseong Fortress
영어음역 Gochang Eupseong
이칭/별칭 모양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모양성로 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읍성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모양성로 1]지도보기
전화 063-560-8055[고창읍성 안내소]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45호
문화재 지정일 1965년 4월 1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개설]

조선 시대 읍성들은 평야 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었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성안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고창읍성은 나지막한 야산을 이용하여 바깥쪽만 성을 쌓고 해자(垓字)를 팠으며, 성안에서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네 개의 우물과 두 개의 연목을 만들어놓았다.

성벽을 쌓은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굄돌을 넣는 방식으로 쌓았으나, 그 가운데는 초석(礎石), 당간지주(幢竿支柱) 같은 것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그러나 미석[성의 맨 아래에 성벽 바깥으로 내밀게 깐 얇은 돌] 이하의 성갈퀴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제각각이라 1m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땅에 깔려 기둥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있어 이채롭다. 특히 성벽에 전라도 도민들이 총동원하여 축성함으로써 안보총화의 예지와 외침을 대비한 유비무환의 풍토를 조성했던 산 증거들이 각자되어 있다. 고창읍성은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고창읍 읍내리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고, 고창읍성에 올라서 보며 고창읍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주변에 고창군청, 고창군립미술관, 고창판소리박물관, 고창문화의 전당 등이 있다.

[변천]

고창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성벽의 ‘계유소축송지민(癸酉所築宋芝玟)’이라는 각명(刻銘)과 고창읍성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 중 가장 오래된 책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1486년(성종 17)에 나왔다는 점에서 1453년(단종 1)에 세워지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고창읍성 내에 있는 고창객사에서는 객사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달, 그리고 나라의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 왼쪽과 오른쪽의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형태]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고창읍성은 조선 전기의 읍성 중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자연석 성곽으로 넓이는 4~6m이고, 둘레는 1,684m이며, 면적은 18만 9,764㎡에 이른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 지역이 백제 때 모량부리(牟良夫里)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다. 동쪽으로는 진산(鎭山)인 방등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남·북의 네 문과 여섯 군데의 치(雉), 두 군데의 수구문(水口門), 옹성(壅城)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황]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병화 등으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2009년 현재 14동의 관아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고창읍성 성곽길은 2007년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고창읍성 내 척화비고창읍성 비석군 등이 있다.

또한 고창읍성에서 모양성밟기가 진행되고 있다. 답성 민속은 윤년에 한 번 윤달에 고창 읍성을 찾아가 성을 밟으면서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의식이다. 1778년 윤삼월에 고창 현감 이항이 모양성 개축을 주도하면서 성곽 축조의 기원과 고을 보호의 방편으로 불교의 탑돌이와 다리밟기를 차용하여 주민들에게 권장한 듯 하다. 고창읍성의 성밟기 놀이는 작은 돌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것이다. 한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의의와 평가]

고창읍성은 나주시 진관(鎭管)과 더불어 전라도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이던 입암산성이 법성포와 고창, 영광 지역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하자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전초 기지로서 축성되어 전라도 내륙을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지켜왔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