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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758
한자 吳世才
영어음역 O Sejae
이칭/별칭 덕전(德全),복양(澓陽),현정선생(玄靜先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정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별
생년 1133년연표보기
몰년 1199년연표보기
본관 고창

[정의]

고려 전기 고창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덕전(德全), 호는 복양(澓陽). 할아버지는 한림학사 오학린(吳學麟)이다.

[개설]

오세재(吳世才)[1133~1199]는 젊어서 힘써 공부하였는데 육경(六經)을 손으로 베껴 읽어서 능통하였다. 또 날마다 『주역(周易)』을 외웠으며 시문(詩文)에 탁월하였으므로 당나라 한유(韓愈)와 두보(杜甫)의 풍(風)이 있어 당세에 널리 알려졌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지제고(知制誥)가 되었으나 성품이 소탈하고 얽매이기 좋아하지 않아 남에게 용납되지 못하자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인로(李仁老)가 세 번이나 조정에 추천하였으나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해좌칠현을 자칭하던 죽림고회의 일원으로 시주(詩酒)를 즐기며 지냈다. 그리고 53세의 나이로 18세인 이규보(李奎報)와 망년지우(忘年之友)로 지냈으며, 말년에는 외가가 있던 경주로 내려가 살다가 그곳에서 졸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과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동문선(東門選)』에 오언율시 2편과 칠언율시 등 20여 편이 전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이규보가 제문을 짓고 현정선생(玄靜先生)이라 사시(私諡)하였다. 그리고 1998년 10월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합숙관에 ‘병목(病目)’이란 시비(詩碑)를 문학 동산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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