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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67
한자 儒學者
영어음역 Yuhakja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노석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유학(儒學)의 성립과 발전에 힘쓴 사람들.

[개설]

우리나라에 유학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삼국 시대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경전은 1992년 평양 정백동 364호분에서 발견된 죽간에 기록된 『논어(論語)』이다. 이것은 B.C. 4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인물]

유학이 고창 지역에 언제부터 들어와서 퍼지게 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고창 지역 주변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유학이 퍼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왕인(王仁)이다. 왕인은 고창 지역에서 멀지 않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응신천황(應神天皇) 16년인 285년에 왕인이 일본에 와서 『논어』와 『천자문(千字文)』을 전수하여 주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일본서기』의 기록은 2주갑을 내려야 하므로 이때는 405년에 해당한다. 즉,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는 이미 그 이전부터 『논어』 등이 전래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후 전라도 지방에서 유학과 관련된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유학의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후기 신라 시대 인물인 전라북도 군산 출신의 최치원(崔致遠)이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후 고창 지역과 이웃한 태인현감을 지냈다. 최치원은 당시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떠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는가 여부는 확실하지 않는다.

한편, 이즈음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후기 신라의 3최 중 1인으로 불리는 최지몽(崔知夢)이 탄생하였다. 최지몽은 전라남도 영암 지역 호족인 원보(元甫) 최상흔(崔相昕)의 아들로, 본명은 총진(聰進)이다. 그는 태조부터 성종까지를 보필했던 고려 전기의 큰 학자이다.

이처럼 고려 전기에 이름을 날렸던 최지몽이 영암 출신이라는 것은 최지몽 외에도 주변에 많은 학자들이 있었을 것임을 이야기해 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려 시대부터 각 지역에 향교를 설치하여 지역 학자들을 교육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보았을 때 고려 시대에 고창 지역에서 많은 학자들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인물]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창 지역에는 고창, 흥덕, 무장에 향교가 설치되어 유학이 발전하게 된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의하면 고창 출신으로 사마시에 입격한 사람은 1534년(중종 29)에 생원시에 입격한 김경희(金景熹)를 비롯한 총 25명이다. 김경희돈목재(敦睦齋) 김기서(金麒瑞)의 아들이다. 무장 출신 입격자는 1528년(중종 23)에 진사시에 입격한 안동김씨(安東金氏) 김질(金質)을 비롯한 총 54명이고, 흥덕 출신 입격자는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같이 입격한 송함을 비롯한 총 52명이다.

이와 같이 『사마방목』에 의하면 고창 지역에서는 1480년에 생원과 진사 양시에 입격한 송함을 비롯해 총 131명이 생진시에 입격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사마방목』은 조선 전기 자료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송함에 앞서 입격한 인물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중 거주지가 고창으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은 1593년(선조 26)에 급제한 김홍우(金弘宇)[1539~1598]를 비롯하여 9명이다. 무장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은 1396년(태조 5)에 급제한 유순도(庾順道)를 비롯한 15명이다. 흥덕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은 1441년(세종 23)에 급제한 송수중(宋守中)을 비롯한 7명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고창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과에 급제한 사람은 1396년 유순도를 비롯하여 고종 대까지 꾸준히 늘어서 총 31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하지만 이 숫자는 거주지가 명확하게 고창 지역으로 기록된 사람에 한정된 것이며, 거주지가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제외되었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문과에 급제했다고 봐야 한다. 1992년에 작성된 『고창군지』에는 과거 합격자로 고창현 52명, 무장현 133명, 흥덕현 64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고창 지역에서는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부터 문과 급제자를 배출할 정도로 많은 학자들이 활동하였다. 이들 외에도 사마시나 문과에 급제하지는 못하였지만 문집을 남긴 학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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