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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리 수다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520
한자 龍基里水多堂山祭
영어음역 Yonggi-ri Suda Dangsanje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Suda Village, Yonggi-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수다마을지도보기
집필자 송화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의례장소 마을 앞
신당/신체 당산나무[팽나무]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수다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풍농을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용기리 수다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수다마을용기리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수다동(水多洞)’, ‘수대동’이라고도 한다. 수다마을은 간척을 하기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사람 가운데 배를 가지고 어업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수다마을은 산을 등지고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국도 22호선이 가로 질러 감에 따라 마을이 분리되어 있다. 수다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을 기준으로 ‘양달뜸’과 ‘음달뜸’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수다마을은 자연 마을로서 조선 후기에 자연 부락이 형성되면서 당산제도 동시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정착할 때에는 해안 지역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지형의 변화로 어촌이 아니라 농촌이 되었다. 따라서 마을의 동제도 당산제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수다마을의 당산나무는 팽나무로, 도로를 사이에 둔 마을 앞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할머니’라고 부르기 보다는 대체로 ‘당산나무’, ‘당산님’이라고 부른다. 현재 당산나무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다. 예전에는 어른이 안으면 세 아름이 될 정도로 큰 다섯 그루의 나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바다에서 짠물이 올라옴에 따라 점차 뿌리부터 썩으면서 6·25전쟁 이후 고목이 되었다.

이후 수다마을은 새마을운동 후원금으로 팽나무 다섯 그루를 사서 마을 회관 앞에 두 그루, 당산 자리에 세 그루를 심었다. 그러나 당산 자리에는 조수 간만으로 바다의 짠물이 올라옴에 따라 두 그루는 죽고 현재 한 그루만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회관 앞에 심은 나무와 비교해 보면 당산나무가 훨씬 작아 보였다. 그리고 수다마을 뒤편으로 큰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소나무를 천룡이라 하여 모셨으나 지금은 모시지 않으며, 나무도 베어 버렸다.

[절차]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 무렵 마을 앞에 자리한 당산나무에서 모신다. 마을 사람들은 저녁밥 먹을 무렵, 즉 어둠이 들 무렵에 ‘마을의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제를 모신다고 한다. 당산제를 모시는 달에 마을에서 사람이 죽거나 아이를 낳게 되면 다음 달인 이월 초하루로 미루어 모신다. 심지어 마을에서 개가 죽더라도 제를 모시지 않고 미룬다고 한다. 이는 마을이 깨끗하지 못하면 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사 비용은 마을 사람 가운데 나이가 많은 어른들 2~3명이 중심이 되어 집집마다 돌면서 성의대로 거두어들인다. 예전에는 당산나무와 마을 입구에 금줄과 황토를 뿌렸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정월 열 나흗날 저녁이 되면, 우선 굿을 치며 마을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잡곡밥을 당산나무, 샘, 천룡, 골목길에 뿌리고 다닌다. 이는 마을의 제액과 잡신을 물리치고 아울러 한 해 동안 무사히 자식들 모두 잘 되기를 빌기 위함이다. 부녀자들이 잡곡밥을 뿌리는 동안 남자들은 굿을 치면서 부녀자들처럼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이에 대해서는 쇳소리를 내야 마을이 좋다고 한다. 잡곡밥을 뿌리면서 마을을 돈 뒤 당산나무로 와서 마을 사람들 모두 참여한 가운데 제를 모신다.

제관은 따로 두지 않고, 마을 공동으로 제물을 장만하여 제상을 차린다. 제물은 잡곡[수수·보리·쌀·팥], 나물, 과일, 생선, 돼지 머리를 장만하며 제주는 막걸리나 소주를 준비한다. 제는 축문이나 소지를 올리지 않고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단히 재배를 올리고 비손한다. 당산제가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마을 회관에서 놀다가 각기 집으로 돌아간다. 마을 가운데로 국도가 놓여 있어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죽는 경우는 없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당산님’이 도와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용기마을에서 제를 모실 즈음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수다마을로 피해 오기도 하였다. 이때 피하지 않으면 제일을 미루게 되는데, 그러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제물 비용을 물어주어야 한다.

[축문]

용기리 수다마을 당산제는 줄다리기형 마을 굿의 전통을 유지하는 마을로서 별도로 축문은 없다.

[현황]

용기리 수다마을 당산제는 줄다리기형 마을 굿이었다. 그러나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이농 현상, 그리고 현대 문물의 급속한 전래로 전통적인 동제가 약화되어 줄다리기는 중단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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