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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508
한자 沙乃里堂山
영어음역 Sanae-ri Dongsan
영어의미역 Shrine-Mountain in Sanae-ri
이칭/별칭 사내리 당산선돌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1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송화섭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수호신체
양식 선돌
높이 160㎝[아버지 당산]|124㎝[어머니 당산]
둘레 128㎝[아버지 당산]|115㎝[어머니 당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12 지도보기
소유자 정창진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2호
문화재 지정일 1999년 7월 9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당산.

[개설]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사내마을에는 4기의 당산석이 세워져 있는데,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번영과 소원 성취를 비는 제사를 지낸다. 당산에 정성들여 제사를 드리면 당산이 온 마을을 수호하여 질병, 재앙 등을 방지하게 되고, 마을의 번영과 함께 소원이 성취되지만 만일 제사를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당산이 노하여 마을 전체가 재화를 입는다고 한다. 이곳의 당산제는 조선 성종이나 선조 대부터 지내왔다고 전하는데, 원래 12당산[선돌 4기, 와석 6기, 당목 2기]을 모셔오다가 어느 날 동네 어른 꿈에 신령이 나타나 4기의 당산에만 제사를 올리라 하여 4당산만을 모시고 있다고 전한다.

[형태]

당산의 위치는 마을 입구에 아들 당산 1기, 10여 m 마을 쪽으로 더 들어가 오른쪽 논둑길에서 남북 일직선으로 어머니 당산·아버지 당산·며느리 당산 3기가 서로 50m씩의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어머니 당산과 아버지 당산은 갓을 쓰고 있지만, 아들과 며느리 당산은 갓을 쓰고 있지 않고 땅속에 거의 묻혀 있는 상태이다. 아버지 당산은 높이 160㎝, 둘레 128㎝, 갓둘레 173㎝이고, 어머니 당산은 높이 124㎝, 둘레 115㎝, 갓둘레가 257㎝이다. 아버지 당산의 갓은 공음면건동리 미륵불 관석처럼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의례]

사내리의 당산제는 조선 전기부터 지냈으며, 원래는 12당산이었으나 지금은 4당산만 남아 있다. 제관은 마을 사람 중에서 부인이 임신을 하지 않았고, 월경이 없으며, 상을 당하지 않았고, 가내에 질환이 없으며, 초상집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을 뽑는다. 제관은 일주일 전부터 부부관계를 금하고 깨끗이 목욕하며 외출을 금하며 근신한다.

14일에는 당산 주위에 인줄[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며 복기가 있는 사람은 이웃 출입을 금한다. 또한 마을의 우물 물을 품어 내어 깨끗이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한다. 새로 받은 우물물로 쌀을 씻어 밥과 떡 등의 음식을 장만한다.

정월 대보름 오전 12시부터 3시 사이에 밥과 떡, 과실, 건어물 등을 차려놓고, 풍물을 치고 제관이 기도를 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참석한 마을 남자들도 복기가 없고 깨끗하지 못한 곳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4기의 당산 앞에 모두 제물을 차리며 절을 두 번씩 한다. 제사가 끝난 후 제관은 3개월간 외출을 금하고 근신한다. 또한 왼 새끼줄을 꼬아 당산에 감는데, 백기를 꿰어둔다. 백기는 당목을 찢은 것을 말한다.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드는 비용은 동네에서 추렴하는데, 예전에는 쌀을 냈으나 지금은 가구당 2만 원 정도 걷는다고 한다. 만약 정월에 궂은 일이 생길 경우 당산제 날짜를 음력 2월 초하루로 변경하기도 한다.

[현황]

사내마을에는 약 26가구가 사는데, 다른 마을처럼 젊은 사람들이 없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지만 3년 전부터 자정에 당산제를 지내는 것이 춥고 번거로워 보름날 정오에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은 여전히 여자들이 손을 대지 못하고 남자들이 장만하고 상을 차린다. 그리고 예전에는 굿을 치며 놀았는데, 지금은 굿을 칠 사람이 없어 그냥 제를 지낸 지 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사내리 당산 4기는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사내리 당산이 세워진 곳의 터를 확보하여 안정하게 구축해 놓은 상태이다. 당산돌이 언제 건립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타 지역의 당산과는 달리 부모를 포함한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예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