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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75
한자 高友說
영어음역 Go Uyeol
이칭/별칭 은경(殷卿),옥호(玉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690년 4월 3일연표보기
몰년 1757년 12월 6일연표보기
본관 장흥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은경(殷卿), 호는 옥호(玉湖). 주부 고억령(高億齡)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고수겸(高守謙)이다. 할아버지는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이며, 아버지는 옥숙(玉淑) 고재혁(高在爀)이다. 부인은 도강김씨(道康金氏)로 김세기(金世起)의 딸이다. 자녀로 고한탁(高漢倬) 등이 있다.

[활동사항]

고우열(高友說)은 어려서 가학(家學)으로 글을 배웠는데, 6~7세에 경전과 사서를 읽었고, 자라면서 학행이 드러났다. 수차에 걸쳐 과장에 나갔으나 원칙만으로는 합격이 어렵던 당시 비굴한 방법이나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아 합격권에서 밀려났다. 이후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아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옥호(玉湖)마을[현재 옥제리 외옥마을] 위에 집을 마련하고 우졸재(愚拙齋)라 편액하고, 홀로 옛 사람의 서적을 뒤적이며 흥이 일면 시문을 지어 읊었다. 또 다정하고 뜻이 통하는 벗이 오면 함께 학문과 세정을 논하고 비판했으며, 심정을 토로했다. 1755년(영조 31) 크게 흉년이 들자 집안의 곡식을 방출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1757년(영조 33) 12월 6일 68세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세 때인 1708년(숙종 34) 「유상대기(流觴臺記)」를 지었고, 1737년(영조 13)에는 향교의 「명륜당상량문(明倫堂上樑文)」을 지었다. 1745년(영조 21) 3월 옥호마을의 집에서 종친이 모여 수계(修契)할 때 오언율시 4수를 지어 화답하였다. 평생 많은 시문을 지었으나 모두 유실되고, 문집에는 겨우 시 10수와 과제(科製) 7편이 전할 뿐이다. 연보는 없으나 행장과 묘비문이 있어서 그의 학문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저서로 『옥호집(玉湖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의 빈월산 아래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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