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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513
한자 文殊寺木造地藏菩薩坐像-十王像一括
영어공식명칭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Statue And Ten Kings Statue of Munsusa Temple
영어음역 Munsusa Mokjo Jijangbosaljwasang Mit Siwangsang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48[칠성길 13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장보살상|시왕상
제작시기/일시 조선 시대
제작지역 고창
재질 나무|흙
높이 84㎝[지장보살]|117.5~135㎝[시왕상]
소장처 문수사 명부전
소장처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48[칠성길 135]지도보기
소유자 문수사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
문화재 지정일 2006년 6월 16일연표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920호
문화재 지정일 2016년 11월 16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에 있는 조선 시대 목조 지장보살과 시왕상.

[개설]

명부전은 대웅전 왼쪽에 북향으로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내부에 목조지장보살좌상 1좌와 시왕상 10좌 등 총 11좌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는 이외에도 인왕상 2좌 등 총 13좌가 봉안되어 있으나 2004년에 도난을 당하였다.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은 2004년 2월 시왕상 가운데 제1진관대왕상과 제7태산대왕상, 제8평등대왕상, 제9도시대왕상 등에서 후령통(候鈴筒)[복장(服藏)을 넣는 통]에서, 『법화경』 등과 함께 「시왕조성발원기」가 발견되어 1654년(효종 5)에 벽암당 각성의 시주에 의하여 일괄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1758년(영조 34)에 쓰인 「문수사창건기(文殊寺創建記)」 및 1758년에 쓰인 「고창현취령산문수사한산전중창기(高敞縣鷲嶺山文殊寺寒山殿重創記)」가 한산전에 걸려 있다. 이에 따라 1658년(효종 9) 회적당(晦迹堂) 성오대사(性悟大師)가 대웅전을 창건한 후 그 다음해 상유(尙裕)에 의해 대웅전 삼존불과 함께 조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6월 16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11월 16일 보물 1920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 84㎝에 달하는 아담한 목조상으로 개금되었다. 목조지장보살상좌상은 결가부좌를 하였는데, 어깨가 넓으면서도 둥글고 전체적으로 장대한 느낌을 준다. 방형의 원만한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고, 귀에는 꽃 모양의 귀걸이를 착용하였다.

눈은 가늘고 긴 편으로 선정에 든 듯 반개하였고,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갔으며 코는 코뿌리에서 직사각형을 붙인 듯이 표현되었다. 상체는 어깨가 둥글어 건장한 편이지만 가슴은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통견의 옷에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었고,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대었으며, 둘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을 펴고 넷째 손가락을 구부렸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오른쪽 무릎 위에 놓아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손바닥에는 손금까지 묘사하여 놓았다. 가슴은 넓게 노출시켜 상체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배 부근에 상단이 연꽃 모양으로 주름 잡힌 승각기를 입고 있으며, 오른손에 걸쳐 옷자락이 흘러내리고, 다시 내의 아래 부분으로 밀어 넣어져 있다. 대의자락이 결가부좌한 두 발의 발목 부근까지 덮였고, 두 무릎 앞에 삼각형의 옷자락이 부챗살처럼 표현되었다.

시왕상 모두 목조로 조각한 뒤 삼베를 붙이고 석회를 바른 후 채색을 하였다. 발원기에 의하면 1654년 벽암당 각성이 증명, 상유가 화주가 되어 조성하였던 것으로 의좌상(倚坐像)이다. 각 상은 두 다리 사이로 흘러내린 의대(衣帶)에 각 왕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또한 각 상은 관복을 입고 머리에 원유관(遠遊冠)을 쓴 제왕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간단한 형태이다. 얼굴은 방형이며 관과 지물과 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넣었다.

[특징]

지장보살상은 코뿌리에서 갑자기 두드러지게 표현된 코와 둥글면서 두툼하게 군살을 표현한 양감 있는 턱, 상단이 연꽃 모양으로 둥글면서 주름 잡힌 승각기 등의 표현으로 무염파(無染派)[무염과 해심을 중심으로 1630년대에서 1650년대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조각승 유파], 조각 양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변성대왕의 흰 눈썹과 코 밑의 수염, 그리고 좌우로 넓게 퍼진 턱수염 등은 대부분의 변성대왕상에서 볼 수 있는 상호이지만, 특히 완주 송광사 지장전 송제대왕상과 비슷하고,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놓고 손을 약간 벌리고 있는 초강대왕상은 송광사 오관대왕상과 유사하다.

한편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한 도시대왕상은 송광사 평등대왕상과 비슷하다. 또한 완주 송광사 지장전 시왕상과 비슷한 상인 태산대왕상은 방형의 얼굴에 가늘고 긴 눈,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이 완주 송광사 태산대왕상과 비슷하다.

[의의와 평가]

지장보살상좌상은 1633년(인조 11) 선운사 대웅전 삼신불상, 1635년(인조 13)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1651년(효종 2)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 및 대전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 1654년(효종 6) 불갑사 지장보살상, 1656년(효종 8) 완주 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등과 유사한 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한 무염(無染) 조각승 계열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시왕상은 착의법과 형태, 자세 등에서 이보다 앞선 완주 송광사 지장전 시왕상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다만 존명이 다른 것은 후대에 개칠, 또는 보수하는 과정에서 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다른 곳의 존명은 거의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수사 시왕상을 제작한 조각승은 해징, 해심, 성수, 승추, 묘각, 민기, 도균, 승조, 승열, 지문, 명조, 신일, 경성, 일안, 처인 등인데, 그 가운데 해심과 도균은 1656년 송광사 나한전 불상 조성 때 참여하였다. 또한 일안은 1636년 완주 송광사 법당 단청 및 1638년 명부전 단청 불사를 하는 등 이들 조각승들의 일부가 송광사 불사에 참여했기에 고창 지역 조각승의 계보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보인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5.08 보물 지정에 따른 명칭 변경과 보물 지정 기록 추가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보물 지정 관련 기록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