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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만든 강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655
한자 妓生-降仙橋
영어음역 Gisaengi Mandeun Gangseongyo
영어의미역 Gangseongyo Bridge Female Entertainer Mad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석교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손앵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교량 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강선|마을 사람들
관련지명 고창군 흥덕면 석교리 강선교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기생 강선이 선행으로 세운 다리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강선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기생이 만든 강선교」는 조선 성종 연간에 강선이라는 기생이 사비를 털어 해마다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는 냇물에 다리를 세웠다. 마을 사람들이 기생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강선교’라고 했다는 교량 유래담이다. 원래 다리는 없어졌고, 현재 흥덕면 석교리에 있는 강선교는 새로 만든 것이다.

[채록/수집상황]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흥덕면은 지금은 비록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고창 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유적이나 사적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이 유명한 것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현감으로 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흥덕에서 서해안을 향해 십 리쯤 가다 보면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냇물이 있고, 이 냇물을 가로질러 놓여 진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 지방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생생히 전해지고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은 해마다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가고, 논이나 밭이 물에 씻기고, 집이 가라앉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런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재난을 막겠다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다. 강선이라는 기생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기생이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선은 원래 훌륭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기생이 된 것이다. 강선은 입을 것 입지 않고, 먹을 것 먹지 않고 번 돈을 몽땅 털어 다리를 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때는 조선 성종 때 일이었으므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관청에서 많은 협조를 하였다. 성종은 농사를 나라 일의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저수지를 만들거나 둑을 쌓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때였으므로 강선이 하는 일에 관청에서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빈둥거리던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 일에 나섰다. 몇 달이 지나 다리 공사는 끝이 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길이 새기기 위하여 다리의 이름을 ‘강선교’로 붙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기생이 만든 강선교」의 주요 모티프는 ‘기생 강선의 선행으로 세운 다리’이다. 일반적으로 설화에서 기생은 신의가 없고 욕심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배비장전」의 근원설화가 되는 「발치설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기생이 만든 강선교」는 다수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기생의 면모를 보여준다. 다리를 세우는 일뿐 아니라 만년에는 빈민 구제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생 강선의 환난상휼의 정신은 이후 계월향, 논개 같은 의기(義妓)에게 이어져 영조·순조 연간의 김만덕에게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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