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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496
한자 仁村先生生家
영어음역 Inchon Seonsaeng Saengga
영어의미역 House of Scholar Inch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43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생가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정면칸수 5칸[곳간채]
측면칸수 1칸[곳간채]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435 지도보기
소유자 김병관 외 3인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39호
문화재 지정일 1977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 있는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가 살았던 조선 후기 생가(生家).

[개설]

인촌 선생 생가는 교육자, 사업가, 정치가였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1891~1955]와 수당 김연수 형제가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이다. 김성수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으며, 정치,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 근대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김성수, 김연수 형제는 평생을 두고 합심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서로 협력하여 창설, 혹은 육성한 기관으로 동아일보사, 고려대학교,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삼양사(三養社), 주식회사 경방(京紡) 등이 있다. 1977년 12월 31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부안면에서 지방도 734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인촌 김성수, 수당 김연수 선생 생가입구(仁村 金性洙, 秀堂 金秊洙 先生 生家入口)’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가면 인촌마을의 당산나무와 인촌정(仁村亭)이 있다. 그곳에서 300m 들어가면 솟을대문 기와집이 나온다.

[변천]

낮은 담을 경계로 안쪽에 큰댁, 대문 쪽에 작은댁이 있는데, 큰댁 안채는 1861년 11월 13일, 동쪽 사랑채는 1879년 6월 7일, 작은댁 안채는 1881년 10월 9일에 김성수의 조부 낙재(樂齋) 김요협이 건립하였다.

큰댁 사랑채의 문간채는 1893년 3월 29일 인촌 선생의 양부(養父)인 원파(圓坡) 김기중(金祺中)이 건립하였으며, 작은댁 사랑채는 1903년 3월 25일에 부친 지산(芝山) 김경중(金暻中)이 건립한 것이다. 40여 년에 걸쳐 지어진 방대한 규모의 큰댁, 사랑채, 작은댁, 곳간 등은 당시 전라도 토호의 집 규모를 보여준다.

인촌 선생 생가는 마을 사람에게 위탁, 보존해 오다가 1977년 8월 김연수가 자비를 들여 옛 모습 그대로 보수하면서 없어진 건물을 복원하였고, 노폭 5m의 진입로도 개설, 완공하였다.

[형태]

대지는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낮은 담을 경계로 북쪽에 큰집, 남쪽에 작은집이 세워져 있다. 큰집에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안문간채, 바깥문간채 솟을대문 등이 있으며, 작은집은 큰집에 비해 곳간채만 없을 뿐 집의 규모나 격식에 큰 차이가 없다.

인촌 선생 생가의 가장 안쪽에 있는 큰집의 안채는 팔작지붕의 일자형 홑집이다. 남부 지방의 일반적인 민가처럼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다. 큰방과 부엌의 한쪽 모퉁이에 부엌방이 있으며, 그 옆에 도장이 있다. 건넌방은 전면에 벽장을 달아 심벽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며, 측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안채 마당을 사이에 두고 곳간채가 마주하는데,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며, 억새로 지붕을 이었다. 각각 2칸씩의 곳간과 헛간, 그리고 온돌방이 있으며 헛간에는 디딜방아가 놓여 있다.

사랑채는 안채 동쪽에 문간채들과 함께 별도의 일곽을 이룬다. 사랑채는 ‘一자형’ 팔작집이며, 칸살은 왼쪽부터 큰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었다. 앞면과 측면에 모두 툇마루가 있으며, 안방 뒤에는 조그만 골방을 덧달아 내었다. 이와 같이 큰방 뒤쪽에 골방이나 도장방을 만든 것은 이 집의 공통된 특징이다.

작은집은 큰집과는 달리 각 건물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一자형’이며 부엌, 큰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구성되어, 큰집 안채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지만, 대청의 규모가 1칸이고 건넌방 뒤쪽에 도장방이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사랑채는 ‘ㄱ자’ 집으로 앞면에 돌출된 누마루까지 갖추고 있어 큰집보다도 격식을 갖추었다. 왼쪽부터 부엌과 골방, 안방, 대청, 건넌방과 윗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넌방 앞에 누마루가 있다. 삼면에 세살문이 있고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안문간채가 있어, 남녀유별에 따라 공간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안문간채는 억새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나 나머지는 모두 기와집이다. 북쪽의 큰집에는 안채, 사랑채를 비롯하여 곡간, 안행랑채, 사랑채, 바깥행랑채, 대문채 등이 있는데, 작은집과 비교하면 큰집에 곳간 1채가 더 있을 뿐 건물 자체의 규모나 치장에 사용된 부재 등은 거의 같다.

[의의와 평가]

하나의 대지 안에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두 집을 함께 지은 점이 특이하다. 현재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상당한 규모를 갖춘 인촌 선생 생가는 당시 전라도 지방 토호의 부유한 환경을 보여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