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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09
한자 道巖書院
영어음역 Doamsa
영어의미역 Doamsa Shrine
이칭/별칭 도암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613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
문화재 지정일 2005년 6월 17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질(金質)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개설]

도암서원안동김씨의 서원으로 1613년(광해군 5)에 김질(金質)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어 그가 살던 집터에 창건하였다. 이후 1835년(헌종 1)에는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킨 증손 김경철(金景哲)을 배향하였으며, 1857년에는 김경철의 아우로 임진왜란 때에 왕을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김익철(金益哲)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김질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다. 천성이 온순 단정하며, 효심이 지극하여 양친을 지성으로 모셨다. 1508년(중종 3) 모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 있는데, 밤 사이에 한 길이 넘는 눈이 내렸으나 여막 둘레에만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곳을 제청산(祭廳山)이라 불렀다.

김경철은 호가 은송당(隱松堂)이며, 김질의 증손으로 1575년(선조 8)에 공음면 개가리[현 공음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 부모상을 당해 6년을 시묘살이하고, 복을 벗은 뒤에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남원교수에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고, 복호(復戶) 역시 받지 않았다. 정유재란 때에 인근 선비와 함께 영광성을 지키고, 이괄의 난에 신유일 등과 함께 창의하여 군량을 모집하다가 난이 평정되자 양곡을 관아에 바쳤다.

[위치]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6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여 배향하고 향사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도암서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 건물이다. 호박주초 두리기둥에 창방과 평방을 올린 양식이며, 창방과 평방 위에 도리를 올린 뒤 그 위에 처마의 연목을 걸고 부연을 단 형식이다. 창문은 3칸에 2짝씩 6짝이고, 빗살무늬이며, 전면 단청을 했다. 정려와 봉안각의 건물 구조는 사우와 같고 전면 단청을 했다. 봉안각은 전면 벽으로 막고, 판자문으로 봉쇄했다. 강당은 방풍을 단 한와 팔작집이다. 도도록하게 다듬은 덤벙주초와 두리기둥에, 2칸은 대청이며 좌우로 방을 들였고, 방에는 2짝문, 재청에는 각각 4짝문을 한 격차장이다.

[현황]

홍살문, 외삼문, 강당인 영모당과 함께 정려각과 봉안각이 내삼문인 효충문 좌우로 있고, 내삼문 안에 김질의 사우인 도암서원이 있으며, 도암서원 뒤 현충문 안에 영모당의 6대조인 익원공 김사형(金士衡)의 부조묘가 배치되어 있다. 2005년 6월 17일에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2월 14일에 향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질은 조정 및 중국에 잘 알려진 대효(大孝)일 뿐만 아니라 충(忠)을 겸하여, 녹권을 보관한 봉안각이 세워졌다. 영모당, 정려, 봉안각 모두 오랜 역사를 추정케 하고 있으며, 봉안각의 녹권함과 하마비 또한 고창 지역에서 유일한 유물로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