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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52
한자 曺益齡
영어음역 Jo Ikryeong
이칭/별칭 화암(花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성별
몰년 1597년연표보기
본관 창녕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화암(花巖).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으로, 우승지 조후(曺厚)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호인(曺好仁)이다.

[활동사항]

조익령(曺益齡)은 지략이 뛰어났으며, 충의를 자임하는 인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일상생활에 있어 ‘충신독경’(忠信篤敬)이란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아 지조와 절개를 숭상하고 인품이 강직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봉사(奉事) 조익수(曺益壽)와 손자인 수문장 조윤지(曺允祉) 등과 함께 가동(家僮) 18명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가재(家財)를 털어 군량을 조달하고, 채홍국(蔡弘國)·고덕붕(高德鵬)·채우령(蔡禹齡) 등과 함께 흥덕 남당리에서 피를 나누어 마시고 의병을 일으킬 것을 다짐한 이른바 ‘삽혈동맹(歃血同盟)’을 맺고 부안 호벌치(胡伐峙)에서 접전하여 수많은 적을 죽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는 김영년(金永年)에게 서찰을 보내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가, 흥덕 장등평(長嶝坪)에서 채홍국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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