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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561
한자 興城東軒
영어공식명칭 Ancient magistrate's office in Heungseong
영어음역 Heungseong Dongh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 428-3[동헌길 4]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목조 건축
양식 익공계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 시대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 428-3[동헌길 4]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
문화재 지정일 1976년 4월 3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개설]

동헌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 건물로, 중앙에 담과 정문을 내어 각종 집무실과 창고를 두고 주변에 객사와 향교 등을 두었다. 정문 안에는 다시 담을 쳐서 수령이 공무를 집행하는 외아(外衙)와 수령의 가족이 거주하는 내아(內衙)를 두었다. 동헌이라는 명칭은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위치하는 데서 유래한다.

[위치]

흥덕버스터미널에서 흥덕중학교 방향으로 나아가 흥덕지구대를 지나 사거리에서 교운리로 직진하다 보면 왼쪽에 위치한다.

[변천]

흥성동헌은 원래 흥덕객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3년에 건물의 해체, 보수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흥성읍성에 있던 동헌 건물을 1807년(순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된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명칭도 흥성동헌이라 바꾸게 되었다.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으로, 고려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명을 피해 장덕(章德)을 흥덕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부군(府郡)의 폐합령에 따라 무장(茂長)과 함께 고창군으로 통폐합되었다. 이 건물은 흥덕현의 객사로 1597년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1735년(영조 11) 현감 김정연이 복원하였다.

[형태]

객사는 일반적으로 본체인 정당과 동·서 익실로 구성된다. 정당에는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삭망[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때 대소 관원들이 모여 향궐 망배(向闕望拜)를 하던 곳이다. 흥성동헌은 동·서 익실을 별도로 가구하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역할을 하도록 건립되었다.

흥성동헌은 익공계 팔작집으로 홑처마지붕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기단은 바른층 쌓기를 하였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마련하여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앞 퇴칸과 어칸, 그리고 어칸에 접한 좌우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건물의 양쪽 끝 칸은 온돌 구조의 방을 들였다.

배면의 경우, 어칸과 어칸에 접한 좌우칸에 2분합 판문을 달았다. 건물 측면에서 볼 때에는 3칸의 구조로 되어 있고, 어칸과 퇴칸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온돌방을 놓았다. 건물 양 측면 어칸의 중방 위쪽에 2분합 창문을 달았다. 마루의 천장 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대들보 위에 중보를 걸었고, 그 위에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고 있다.

대들보는 연화머리초에 인휘를 사용하였고, 계풍화로는 용을 그렸다. 중보는 주화머리초에 인휘를 사용하였고, 계풍화는 없으나 계풍화 부분 위쪽에 등 간격으로 세 곳에 홈이 있어 무언가를 달았거나, 다른 건물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까래 부리에는 삼태극문을, 보의 부리에는 태평초를 시문하였다. 각 온돌방에는 마루 면에 접하여 4분합문을 달았고, 각각의 정면에 2분합문을, 측면에 2분합 창문을 달았다.

[현황]

흥성동헌은 다른 곳에서 이건한 건물로, 각 부재의 치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퇴칸의 퇴보가 기둥에 끼워진 상태이고, 건물 왼쪽의 온돌방 대들보와 대부분의 기둥들에 큰 균열이 발생하여 벌레가 서식할 가능성이 많다. 배면의 경우, 비가 들이쳤거나 새어 목부재에 많은 수분의 침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건물에 방염제를 도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장동헌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규모는 작지만 건물 안에 온돌방을 둔 민가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