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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중 도소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83
한자 孫和仲都所址
영어음역 Sonhwajung Doso Teo
영어의미역 Son Hwajung Headquarter's Directorate Site
이칭/별칭 손화중의 활동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 276-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신순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 터
건립시기/연도 개항기
관련인물 손화중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 276-1 지도보기
소유자 정동환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에 있는 동학 농민 혁명 유적 터.

[개설]

정읍에서 태어난 손화중(孫和仲)[1861~1895]은 부안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정읍을 거쳐 무장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은 본래 농민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최부잣집이 있었던 곳이다. 이때 동학 농민 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곳이면서 많은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었던 괴치리로 도소를 옮겼다고 한다.

손화중 대접주는 무장·정읍·고창·부안은 물론 광주·나주·장성·담양을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였고, 그 대상도 다양하였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한 사료적 근거로는 오지영의 『동학사』와 『주한일본공사관기록』 등이 있다.

현재 이곳에 손화중 도소가 설치되었다는 어떤 흔적도 없지만 거주자인 정동환의 구술에 따르면 이곳이 도소였다고 한다. 정동환은 어려서 당숙으로부터 이곳이 교당으로 쓰였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으며, 원래 본채 외에 사랑채가 ‘ㄱ’자의 형태로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랑채에서 사람들의 모임이 잦았다고 한다.

[현황]

현재 빈 터이며 손화중 도소가 설치되었다는 어떤 흔적도 남겨져 있지 않다. 최부자가 살았던 집에 현재는 정동환이 살고 있다. 정동환의 집 문 쪽에 도소가 있었으며, 손화중을 체포한 후 이곳 도소에서 조사, 심문을 한 후 서울로 압송하였다고 한다. 현재 손화중 도소 터는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손화중 도소는 손화중과 관련된 인물 유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 손화중 포의 세력이 괴치리에서 형성되었고 이 세력을 바탕으로 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을 이끌 수 있었다. 곧 이곳의 물적·인적 자원이 곧 동학 농민 혁명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 유적 이전에 동학 농민 혁명 당시 고창 지역 농민군의 세력 분포와 관련하여 동학 교단의 근거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1.28 주소 정보 수정 지역 정보중 무장면 괴치리를 성송면 괴치리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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