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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민속놀이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10205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유년의 기억 속에 숨어 있는 문화 자원]

요즈음에는 뒷동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이나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딱지를 치거나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무줄놀이도 비석치기도 땅뺏기놀이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놀이 공원에 가면 금방 수수께끼가 풀린다. PC방,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영화관 등에 가 봐도 해답이 찾아진다. 전에는 그저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면 됐는데, 지금은 비용을 지불한 만큼만 놀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의 놀이 문화는 이대로 사라지고 잊혀야 하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놀이 문화는 우리들의 삶 속에 숨어 있는 소중한 문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다.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출신으로 현재 고창읍에 나와서 살고 있는 최재언[1961년생] 씨에게 전통 민속놀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청했더니, 먼저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하여 마을 어른들께서 해 주었던 보물찾기 놀이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 중에서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매년 정월 대보름 때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어른들이 짚으로 만든 돈주머니를 만들어 아이들이 잘 다니는 곳에 묻어 놓았죠. 아이들이 그걸 찾으면 자신의 용돈이 되는데, 10원짜리 동전이 있는 짚 주머니를 찾기도 했었죠. 돈이 얼마가 되었든지 주머니를 찾은 기쁨에 어쩔 줄 몰랐어요. 생각해 보면 그게 현대판 보물찾기가 아닐까 싶네요. 요즘에도 전통을 살려 그런 놀이를 다시 해 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마래마을 아이들의 놀이 문화]

마래마을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주최씨 삼효각과 큰샘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가지 놀이 문화가 펼쳐졌다. 그곳은 기마전, 나이먹기살이, 태극기살이, 진돌이[진꺌샹]게임, 땅따먹기, 구슬치기를 했던 놀이 동산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어릴 적 흥겹게 놀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동학 농민 운동 무장기포지에서의 기념제나 백중 행사를 할 때, 어렸을 때 했던 놀이를 다시 재현하는 것을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여기에서는 마래마을 사람들이 들려 준 태극기놀이, 나이먹기살이, 진돌이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태극기살이는 먼저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두 팀을 정한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팀은 태극기 원 안, 진 팀은 태극기 사각형 안을 영역으로 하여 움직인다. 태극기 원 안에 있는 팀은 사각형 안에 있는 사람의 몸을 터치하여 모두 죽이게 되면 이긴다. 반면, 사각형 안에 있는 팀은 한 발을 들고 활동하면서 원 안에 있는 상대 팀을 터치하여 넘어뜨려야 한다. 따라서 이 게임은 가위 바위 보에서 이겨 원 안을 차지한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어떻게 보면 가위 바위 보로 승부가 결정 나는 게임이지만, 게임의 소재를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나이먹기살이는 경주최씨 삼효각 앞에 있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두 팀이 길게 줄을 서면서 시작된다. 시작 종이 울리면 A와 B팀 중에서 한 명씩 달려가서 기둥을 찍는데 먼저 기둥을 찍은 팀은 열 살이 된다. A팀이 먼저 기둥을 찍었다면, B팀은 A팀을 상대하기 위해 10명이나 9명이 함께 달려가서 기둥을 찍어야 한다. 9명일 경우에는 팀원 중 한 명이 삼효각 기둥을 잡고 팔을 펼쳐 9명과 손에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 처음에 달려가서 기둥을 먼저 찍어야 이 게임은 유리한데, 경우에 따라서 두 번째 종을 울릴 때, B팀 중 한 명이 먼저 달려가서 기둥을 찍고 팔을 펼쳤을 때 나머지 9명이 와 주면 게임 승부가 변할 수도 있다.

진돌이놀이는 큰샘 주변에서 놀았는데, 청백으로 두 팀을 나눈 다음 청팀은 삼효각 기둥을 지키고 백팀은 뒤에서 기둥을 습격하여 그 기둥을 찍게 되면 이긴다. 보통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모여서 새벽까지 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래마을 삼효각과 큰샘을 중심으로 했던 어렸을 적 놀이가 모임 때의 이야기꺼리로 등장한다고 한다. 최형남[1959년생] 씨는 “요즘에는 돈 주고 게임방이나 놀이 공원 같은 데 가서 노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를 하면 건전하고 돈도 들지 않고 더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추억 속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뭘 내기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재미였죠. 그때는 뭘 내기할 게 있었어야죠. 순전히 재미로 했어요. 하여튼 저녁밥도 안 먹고 새벽 한 시까지도 했어요.”

비록 지금은 어릴 적의 놀이터가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해 있지만 그 놀이를 즐겼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래마을 사람들이다. 예부터 공동체 놀이는 응집력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동학 농민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정보제공]

  • •  최형남(남, 1959년생, 고창읍 거주)
  • •  최재언(남, 1961년생, 고창읍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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