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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샘 청년회의 봉사 활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10204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구암리 마래마을에는 ‘샘거리’ 모임 외에도 ‘큰샘’이라고 하는 모임이 있다. 큰샘 모임은 많게는 스무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나지만, 고창 관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갑자기 생기는 마을 행사에도 대부분 참석한다. 2010년 3월 15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지낸 당산제에도 회원들이 모두 참석하여 참례를 하고 뒷정리를 맡았다. 샘거리 모임의 구성원들 중에는 먼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어 정기 모임 때는 참석하지만, 마을 행사에는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큰샘은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 일에 앞장서자’는 취지로 1995년 1월 30일[설날]에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큰샘 회원들은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다 보니 소외된 마을의 어르신들을 돌보거나 마을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회원들 간에 우의를 다지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전체 회원은 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기 모임은 두 달에 한 번이다. 회비는 정기 모임 때마다 5만 원씩 갹출하여 식대를 지출하고 나머지를 적립한다. 마을의 행사나 명절 때는 10만 원 정도를 마을에 기부한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에는 어르신들을 마을회관에 모셔 와 단체로 세배를 하고, 추석에는 노래자랑을 주최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큰샘 모임에서는 1998년 당산제를 지낼 때 농악 놀이를 주최하기도 했다. 기맹기패가 없어져 가는 것이 아쉬워 풍물 치는 어른들이 작고하기 전에 직접 배우기도 하고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따로 주최한 것이다. 마래마을 출신으로 현재 고창읍에 거주하고 있는 큰샘 회원 최형남[1959년생] 씨는 “다행히 당시에 당산굿과 지신밟기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둔 테이프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10여 명의 농악패들이 고깔을 쓰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굿을 치는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특히 기맹기패의 마지막 상쇠였던 최소진 할아버지는 당시 80세였는데도 쇠를 아주 잘 쳤다고 한다.

최형남 씨는 당시 당산 굿을 치는 모습을 담게 된 배경을 회상하면서 “그나마 그 자료를 갖고 있어 얼마나 다행이에요?”라고 말한다. 그의 얼굴에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는 곧바로 어렸을 때 무동을 탔던 기억을 되살렸다.

“기맹기 칠 때 어른들이 무동을 태워 주기도 했는데, 저도 타 봤어요. 대장이라도 된 기분이었지요. 무동을 태울 정도면 몸이 가볍고 호리호리해야 했는데, 제가 그랬나 봐요.”

자기 자랑인지 마을 자랑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그의 입가엔 살포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큰샘 모임에서는 추석 때 노래자랑을 주최하기도 했다. 1년에 한 번씩 저마다 감춰 두었던 끼를 발산하는 노래자랑은 그야말로 동네 잔치였다. 큰샘에서 주관한 노래자랑은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상품은 세숫대야ㆍ그릇ㆍ삽ㆍ호미 등과 같은 살림살이와 농기구로 준비했으며, 샘거리와 큰샘 모임을 비롯하여 출향 인사들의 스폰서로 비용을 충당했다.

10여 년 전에만 해도 명절이 되면 마래마을은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런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가슴에 안고 고향 사랑을 실천하는 큰샘 모임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

[정보제공]

  • •  최형남(남, 1959년생, 고창읍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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