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일하면서 놀면서 하나가 되고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10201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마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못방구도 치고 풍장도 치고]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때에 따라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1970년경까지만 해도 모내기를 할 때는 ‘못방구’라고 하여 농악패가 논두렁에서 굿을 치면 모를 심는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노동의 고단함을 잊었다고 한다. ‘풍장’[풍물놀이라고도 하는데, 농촌에서 농부들 사이에 행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으로 나발, 태평소, 소고, 꽹과리, 북, 장구, 징 따위를 불거나 치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때로는 곡예를 곁들이기도 한다]도 1970년대까지 행해졌다. 풍장은 보통 음력 7월 초열흘 지나서 마지막 세 번째 김매는 날인 ‘만드리’ 때 했다고 한다.

“논을 매고 나면 굿을 치고 무동을 태우고 춤을 추면서 마을로 돌아왔어. 주인을 소에 태우고 논에서부터 집까지 와. 그러면 주인이 닭 잡아서 쌀죽을 쒀 줬어. 저녁 내내 날 새도록 놀았제.”

또한 마래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보름이 되면 ‘백중’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큰샘을 청소하고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한바탕 놀이마당을 벌인다. 근래 들어 조금 약해지기는 했지만 오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백중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규약처럼 정해져 있다.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백중 행사를 거행하지 못한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제대로 행사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고 마을에 노인들만 남게 되어 많이 약해진 것이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마음만은 예전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왕샘 물달아오기와 큰샘 청소]

지금도 마래마을 사람들은 백중 행사를 치르기 위해 음력 7월 열나흗날이면 마을 대청소를 한다. 청소를 할 때는 마을 주민 모두가 참석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큰샘 청소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샘거리[마래삼거리]에 있는 큰샘은 아주 중요한 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큰샘 하나로 2도 3면 사람이 먹고 살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큰샘이 자리한 곳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2개 도의 경계이자, 공음ㆍ상하ㆍ홍농 3개 면의 경계 지점이 아닌가.

마래마을에서는 ‘물달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다 싶으면 ‘왕샘’에서 물을 가져와 큰샘에 부어 주면서 물이 잘 나오기를 기원한 것이다. 큰샘 뒤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덕림산 바위 밑에 있는 왕샘은 산 정상부에 있어 물이 나올 만한 곳이 아닌데도 항상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왕샘과 큰샘이 연결되어 있고, 큰샘의 수맥이 왕샘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다.

예전에는 큰샘을 청소할 때 한 사람이 밧줄을 타고 샘 속으로 내려갔다. 샘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안에 있는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린 다음 바닥에 있는 오물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런데 이렇게 샘을 청소하다 보면 그 속에서 붕어가 네댓 마리씩 올라오기도 했다고 한다.

“깊이가 서른 자는 조금 못 되고, 스물예닐곱 자는 될 것이여. 물을 퍼내면 그 깊은 샘에서 어른 손바닥만한 붕어가 너댓 마리씩 나왔어. 누가 잡아다 넣어 준 것도 아닌디. 잡아다 넣어 줘도 물이 세서 죽을 것이고. 그 붕어를 샘각시라고 했제. 청소가 끝나면 다시 넣어 주고. 근디 어쩔 때는 한 마리도 안 나왔어. 요상한 일이제.”

신비로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샘 속에 붕어가 산다면 해마다 보여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샘 속에 통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됐든 마을 사람들은 샘 속에서 나온 붕어를 샘을 지켜 주는 ‘샘각시’로 여겼다.

청소가 끝나고 샘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 마을 사람들은 샘 앞에 정성껏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면 참여한 사람들 모두 음복을 했고, 하루 종일 굿을 치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지금은 큰샘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전기 모터로 샘 속의 물을 품어 낸 뒤, 물을 뿌려 샘 안을 청소한다. 그래도 제사는 옛날처럼 지낸다. 마을 개발 사업이 한창일 때는 큰샘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반대해서 지켜 냈다. 큰샘을 지킨 것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옛날부터 그래 왔던 것도 있어야제. 도로 공사할 때도 안 없어지고, 수도가 다 들어왔어도 안 없어진 걸 보면, 그래도 다른 데보다는 전통을 지키는 것 같지 않어?”

[구암리 4개 마을이 함께한 백중 행사]

구암리는 장동마을, 마래마을, 다옥마을, 구수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논농사와 고추, 담배, 복분자 등 밭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잇고 있다. 외부인이 들어와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원래부터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세대를 이루면서 살고 있다.

2007년 백중날부터는 구수마을 동학 농민 운동 무장기포지에서 4개 마을 공동으로 백중 행사를 열고 있다. 이 행사는 4개 마을 이장단 회의에서 이야기가 나와 시작된 것으로, 2010년부터는 청년회에서 맡아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예부터 백중은 바쁜 농사일이 잠깐 한가해지는 농한기였다. 그래서 음식을 장만하여 먼저 조상들을 섬긴 다음 하루 일을 접고 놀았다. 2009년 동학 농민 운동 무장기포지에서 열린 세 번째 백중 행사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백중 행사는 이제 구암리 4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

  • •  전윤오(남, 1938년생,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노인회장)
  • •  최진성(남, 1939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 •  최인동(남, 1952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이장)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