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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20303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민구

[국화꽃 속에 피어난 마을]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입구에 새로 설치된 의자 모양의 문을 지나 서정주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다 보면, 울타리라든가 앞마당이라든가, 여기저기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일라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는 봉긋봉긋한 국화꽃들이 자리 잡은 것을 볼 수 있다. 비단 생가 근처만이 아니라, 진마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국화꽃이 지천에 피어 있어 정말로 국화꽃 옆에서 걸음을 걷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화꽃 속에서 피어난 마을, 그리고 국화꽃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탄생한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진마마을에는 오랜 옛날부터 곳곳에 야생 들국화가 많이 피어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들국화는 꽃집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꽃이 크고 전체적으로 길쭉한 모양의 국화가 아닌, 동그스름하게 작은 모양을 가지고 있는 토종 국화를 일컫는다. 진마마을 주민 황점술[1944년생] 씨는 이 마을에 살았던 서정주 시인이 늘상 즐겨 보던 꽃도 바로 그 들국화였다고 말한다. 이런 들국화에 대한 정감은 그의 다른 시 「향수」 등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노랗고 커다란 국화는 그야말로 시적으로 형상화된 국화의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그것은 ‘누님’이 살아오면서 겪은 ‘고난’이란 말에 담긴, 깊이를 잴 수 없는 무엇인가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넉넉한 이미지를 가진 국화의 모양을 상상하게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비록 크기가 작은 들국화라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옹기종기 섞여 피어 있게 되면 그 모양새나 향취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또한 배어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서정주 시인 역시도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저 들국화를 곁에서 아끼고 즐겨 본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황점술 씨는 이야기한다.

[국화처럼 만개한 우리네 삶의 진솔함]

「국화 옆에서」의 한 대목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우리네 시골 마을이라면 으레 들리기 마련인 소쩍새 소리와, 꽃 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들국화의 만남은 서정주 시인의 시에서 소박하면서도 유려하게, 낯설면서도 정겹게, 마치 눈앞에 마을의 풍경과 시인의 시심(詩心)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어서 등장하는 천둥소리와 무서리, 그리고 시인의 가슴 조임은 국화의 개화(開花)로 맞추어지면서 애틋함을 자아낸다. 이렇듯 서정주 시인의 시편들은 진마마을에서 우러나오는 또 다른 일상의 모습인 셈이다.

한편으론 진마마을 곳곳에서 국화꽃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국화주 같은 특산품을 만들어서 상품화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만하지만, 아직 진마마을에서는 그런 상품들을 만들지 않고 있다. 그 자세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이 마을에는 국화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김복덕[1923년생] 씨의 말에서 진마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있는 국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마을길을 걷다 보면 오랜 세월 마을과 함께 생을 같이한 마을 사람들과 그 세월 동안 묵묵히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노란 꽃을 피워 위로해 준 들국화의 진한 향기가 어우러져 풍겨 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늘 가까이에서 들국화를 키워 내고, 들국화에 둘러 싸여 있는 진마마을은, 서정주 시인은 물론이고 노란 국화와 같은 누님의 모습을 닮은 마을 사람들을 소요산 아래에서 하나같은 애틋함으로 오롯하게 보듬고 있는 것만 같다.

서정주 시인의 시에 들국화가 만개해 있다면, 진마마을의 곳곳에는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생동(生動)이 만개해 있다. 지금도 여전히 미당시문학관 주위에, 서정주 시인 생가 주위에, 그리고 마을 집집마다 우리네 삶의 진솔함이,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이제는 달관의 여유로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국화처럼 만개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 편의 시를 읽고 그것을 음미하는 동안 느껴지는 아련함과 같다. 그 아련함이 진마마을을 감싸고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행인의 마음을 한층 더 편안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제공]

  • •  김복덕(여, 1923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황점술(남, 1944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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