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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서방을 둔 과부와 말피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203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민구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회관 앞길을 따라 웃돔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물이 딸린 옛집이 하나 나오는데, 그 마당에는 피부 색깔이 불그죽죽하고 그 생긴 모양새가 흉측하기만 한 조각상들이 즐비해 있다. 그런데 그 조각상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름 아닌 도깨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흡사 여느 시골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장승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런 도깨비 조각상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도깨비집이라 불리는 옛집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깨비집 앞에는 웃돔샘이 자리하고 있는데, 해질녘에 물을 길러 오거나 달빛마저도 희미해지는 시간이라면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듯싶은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웃돔샘에는 도깨비 조각상들과 도깨비집이 자리하게 된 것일까?

[과부한테 당한 도깨비의 외사랑]

황점술[1944년생] 씨에 따르면 사실 지금의 도깨비집은 새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 도깨비가 출현하곤 했던 진짜 도깨비집은 현재의 위치에서 다소 떨어진 아랫돔 부근의 방앗간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단다. 사람이 사는 집이야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런 저런 공사나 사정으로 인해 다른 장소로 옮겨질 수 있도 있지만, 사람 사는 집도 아닌 도깨비집을 이렇게 옮겨서 보기 좋게 새로 지어 올리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서정주 시인은 산문집 『도깨비 난 마을 이야기』에서 이와 관련한 내력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정주 시인이 어렸을 적 마을에 어떤 예쁘장하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는데, 남모르게 도깨비 서방을 얻어 밤마다 모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깨비 서방을 둔 덕에 할머니 집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지만, 아무래도 서방이 도깨비인지라 젊은 과부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모양으로, 급기야는 도깨비를 쫓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어느 날 밤 과부는 도깨비 서방에게 이제는 비밀 하나쯤 가르쳐 줘도 되지 않겠냐고 말을 건네고, 도깨비는 과부의 꾐에 홀딱 넘어가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말피[馬血]’라고 말해 버렸다. 젊은 과부는 속으로 옳다구나 하고는, 다음날 저녁 무렵 집 울타리에 말피를 잔뜩 뿌려 놓았다. 늦은 밤 어슬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다 말피에 놀란 도깨비는 그만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과부를 원망하면서, 주변 논밭에 말뚝을 박아 놓고 바위를 던져 망가뜨려 놓은 뒤에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이 서정주 시인이 전하는 도깨비집의 내력이다. 질마재에 자주 출현하곤 했던 도깨비에 얽힌 이 이야기는 외로운 청상과부와 도깨비의 흔하디흔한 옛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토대로 마을의 ‘웃돔샘’에 도깨비집을 만들고 보존한 것은 진마마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적 정서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도깨비인 탓에 사람과의 로맨스엔 실패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도깨비라는 존재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경제적 측면에서나 다른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진마마을 사람들이 20리에 이르는 길을 걸어 부안에서 열리는 5일장에 가지고 간 물건을 팔고 또 필요한 물건을 사서 칠흑같이 어두운 질마재를 다시 넘어왔을 적에, 그 막막한 산 속에서 불을 밝혀 환하게 길을 드러나게 해 준 것이 바로 도깨비들이 들고 있는 ‘도깨비불’이었다는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정보제공]

  • •  김복덕(여, 1923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황점술(남, 1944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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