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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들이 모셔 왔던 가정 신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10204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자현

[집 안에서 가장 큰 성주신]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부녀자들은 지금도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신에게 맑은 물 한 잔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비손을 한다. 집 안을 지키는 신은 성주, 조왕, 삼신, 철륭 등이다. 이 가운데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으로 집 안에서 가장 큰 신이다. 그래서 성주는 안방 윗목에 좌정해 있다.

진마마을에서는 지금도 설과 추석에 꼭 성주상을 차린다. 그것도 조상상을 차리기 전에 먼저 성주상부터 차린다. 아직까지도 마을의 부녀자들이 가족의 안위를 위해 가정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설과 추석 외에도 가족의 생일이나 경사가 있는 날은 성주상을 차리고 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매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성주에게 밥을 올리는 의례를 행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삼신과 조왕 그리고 철륭]

명절에는 삼신에게도 제물을 올린다. 조상상 옆 바닥에 짚을 깔고 밥 한 그릇과 물 한 그릇을 놓는 것이 삼신상이다. 삼신은 아이들을 점지해 주고 수명과 건강을 보살펴 주는 신이다. 그래서 아이를 출산할 때는 그 방의 윗목에 미역과 쌀 등을 차려 놓고 태어날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비손한다.

부엌을 관장하는 신을 조왕이라고 한다. 진마마을에서는 조왕을 ‘조왕님네’라고 부른다. 조왕에게는 정월 초사흘과 매월 초하룻날에 물을 떠 놓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비손을 했다. 보통 아궁이 가마솥 옆에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물 한 그릇을 받쳐 놓고 날마다 이른 새벽에 길어 온 물로 갈아 놓았다. 예전에는 조왕을 모시지 않은 집이 없었는데, 집의 구조가 현대식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아무도 조왕을 모시지 않는다고 한다.

철륭은 장독대에 머물고 있는 신이다. 성주나 조왕 등에 행하는 의례와 똑같이 맑은 물을 장독대 앞에 차리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비손[두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일]을 하였다. 역시 지금은 아무도 철륭을 모시지 않는다고 한다.

[단골과 치병]

선운포 가 있었던 시절에만 해도 진마마을은 근동에선 제법 큰 마을이라 자주 단골판이 형성되었다. 단골[무당]은 마을에 환자가 생기면 여러 가지 행위를 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아이들이 병에 걸렸을 때는 꼭 단골을 불러 왔다. 단골은 아이가 누워 있는 방 윗목에 제물을 차리고 두 손을 비비면서 아이의 병이 빨리 나을 수 있게 공을 들였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 와 바가지를 엎고 두 개의 나뭇가지로 두드리면서 병이 낫기를 축원했다. 이를 ‘물방아’라고 했다. 물방아가 끝나면 단골은 방문을 열고 칼을 밖으로 던졌다. 당시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단골이 아이의 병을 낫게 해 준다고 믿었다. 의료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무당이 마을의 주치의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에 단골도 없고 무당이 병을 고쳐 준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업구렁이에 관한 기억]

진마마을에서는 ‘업’을 집 안에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집 안에 살고 있는 구렁이를 업이라고 생각해서 집 안에서는 절대로 구렁이를 잡지 않았다. 만약 집 안에 구렁이가 나타나면 머리카락을 태워 빨리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는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이지만 사람의 눈에 띄면 좋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월 첫 뱀날에는 ‘뱀맥이’를 하였다. 뱀이 나오지 않도록 한지에 ‘巳(사)’라고 쓴 뒤 집 안 곳곳에 거꾸로 붙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구렁이가 집 안에 나타나는 경우가 없어 이러한 행위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논고사와 동지고사]

진마마을 사람들은 7월 초엿샛날 저녁이 되면 술과 개떡을 준비해 논으로 나갔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논고사를 지내러 간 것이다. 논에 가면 논두렁에 서서 먼저 윗논을 향해 “물우게 짐서방.” 하고 부르면서 “개떡이랑 술이랑 많이 줄께, 올 한 해 농사 잘되게 해 줘!”라고 외친다. 그 다음에는 아랫논을 향해 “물아래 짐서방.” 하고 부르면서 똑같이 외친다. 그리고 준비한 술과 개떡을 논에 뿌려 준다. 이러한 논고사는 1970년 무렵까지 마을에서 행해지다 그 후로 중단되었다. 그 다음날인 칠석에는 마을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아 하루 종일 먹고 놀았다.

동지고사는 동지가 언제 들어 있느냐에 따라 애기동지[애동지]ㆍ중동지ㆍ노동지 세 가지로 구분했다.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어 있으면 애기동지, 중순에 들어 있으면 중동지, 하순에 들어 있으면 노동지라 하여, 그에 따라 각각 다른 음식을 장만하여 먹었다. 애기동지 때는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애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여 시루팥떡을 해 먹었고, 노동지가 들어야 팥죽을 쑤어서 먹었다고 한다.

[정보제공]

  • •  김사채(여, 1925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이만철(남, 1934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황점술(남, 1943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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