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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주는 동창회에서도 단연 인기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20303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가평초등학교 동창회를 빛낸 복분자주]

2009년 10월 24일 가평초등학교 교정에서 제14회 가평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다.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월간 『한국화보』 11월호에 행사 장면을 실은 여러 장의 사진과 더불어 훈훈한 내용의 기사가 함께 실렸다.

이날 동창회는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따뜻한 식사 대접을 하면서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과 어울려 노래자랑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운동장에서 공놀이도 하면서 즐겁게 진행되었다. 단연 인기를 모았던 것은 마을 어른들이 직접 담가 내온 복분자주와 복분자주스였다.

동창회 자리는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가평초등학교의 자랑거리인 느티나무 아래에 마련되었다. 싫다는 사람 하나 없이 참석해서 잔을 채워 건배를 했는데,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동창생들은 한 잔의 복분자술에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치 선약(仙藥)이라도 마시듯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09년 8월 22일, 교정의 느티나무가 녹음을 한창 자랑하고 있을 때, 제10회 동창생들이 졸업 40주년을 기념하여 모교에서 하계 정기 총회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는 임동옥 회장과 고광천 수석부회장, 기호영 총무 등의 수고로 4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모교의 은사 두 분을 모시고 자축을 하는 자리였다. 50줄에 들어선 나이지만, 예전에 개구쟁이였던 아이는 여전히 지금도 장난기가 많고 말없던 친구가 또 역시 곱게 늙어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수많은 대화 중에서 누군가가 복분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관심 깊게 들으면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스스럼없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나이다 싶은지 복분자가 정력에는 그만이라는 말이며, 복분자 농사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친구의 최근 소식이며, 그런 이야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생뚱맞은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내가 들으니까 말이여, 예전에 그 오성한음, 그 있잖으여. 그 이항복이 복분자를 그렇게 좋아했다듬마. 말년에 모함을 받아서 귀양을 갔는데, 동네 사람이 복분자술을 해다 바쳤디여. 밤낮으로 이항복이 복분자술을 마시니께, 시중을 들던 사람이 걱정이 되아서 혹여 술이라 몸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마시지 말라고 했디여. 그러자 이항복이 하는 말이 ‘나는 이 세상에 오래 살아 있고 싶지 않으니, 어찌 입에 맞는 음식을 멀리할 것이 있겠는가.’ 하드람마. 그 유명한 사람도 복분자를 좋아했든가비여.”

[옛사람들도 알아 본 복분자의 힘]

복분자는 이미 고려 후기 충신으로 유명한 이색(李穡)[1328~1396]을 비롯해 조선조의 여러 문인들의 시에서 나올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 또한 궁중 의궤 도설 자료에는 그림까지 실려 있고, 『동의보감(東醫寶鑑)』과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의 책에서도 약효가 탁월하다고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랜 옛날부터 복분자를 즐겨 먹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항복과 관련한 복분자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제25권 「춘명일사(春明逸史)」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으로서, 누군가에 의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항복에 대해서 쓴 이유원도 자신의 책에 직접 경험한 일을 덧붙이고 있다.

그가 어느 땐가 복분자를 사서 집에 가져왔는데, 여름철이어서 문드러지고 으깨져 그 온전한 모양을 잃은 채 붉은 즙이 되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복분자가 녹아내린 즙을 마시자 단맛과 향기가 입에 맞고 마치 술을 마신 듯이 얼큰했는데, 참으로 절품(絶品)이었다고 쓰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

가평초등학교는 1955년 신림국민학교 가평분교로 개교를 한 이래 2009년 2월 18일 49회 졸업식까지 274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때는 학년당 3개 반에 반당 50명이 꽉 찰 정도로 큰 학교였지만, 1989년 벽지학교로 지정되었다. 지금은[2009년] 모두 19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어떤 졸업생 한 명이 「그립기만 한 모교」라는 제목으로 가평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jb-gapyeong.es.kr]에 올린 글이 과거와 현재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면서, 또한 도시와 시골 초등학교 모습을 선명히 하고 있다.

전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근무하고 있습니다. 가끔 고향을 방문할 때 지나가긴 하는데, 올 초에 들러 한 번 학교 안은 못 들어가 봤지만 밖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학교가 휑하더군요. 어렸을 적 50명 정도의 바글바글 하던 교실들은 사용하지 않는 듯 썰렁해 보였고, 어릴 적 그렇게 커 보이던 나무들은 여전히 멋지게 서 있었습니다. 운동장은 좀 좁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그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연수에서 고창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께서 가평으로 내년에 가시려고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불현듯 학교가 떠올라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있네요. 고창에서 제일 작은 학교가 되어……. 선생님 내년에 가시면 정말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곳 경기도는 아이들이 한 반에 40명도 넘고 8반 정도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평처럼 큰 나무는 없습니다. 운동장도 좁고……. 아무튼 솔방울 주어다 겨울에 교실 난로를 시커먼 연기와 함께 피우며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이 납니다. 근무하시는 선생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파이팅……. -초등 교사

옛날 어렸을 적 꿈을 키우던 곳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한 법이다. 한여름이면 운동장 가 느티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고누를 두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을 못살게 굴던 일, 미술 시간에 깜박하고 도화지나 크레파스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가 벌을 섰던 일, 소풍날 갑자기 비가 내리자 예전에 학교에서 구렁이를 잡은 소사 때문이라는 원망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일 등 모두가 추억 아닌 것이 없고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움이 혼자 있으면 외로움으로 번진다. 가평초등학교 졸업생들은 기수별로 동창회를 많이 만들어 가고 있다. 활성화된 동창회도 있고 아직은 그렇지 못한 기수도 있지만, 항상 그리운 어린 시절을 공유하면서 또한 애경사에 힘을 더한다.

최근 복분자를 재배하겠다며 도시에서 마을로 이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예전 같지는 못할지라도 폐교만은 면했으면 하는 바람이 동창회를 열 때마다 동창생들 사이에서 퍼진다는 후문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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