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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밥 죽일라고 하는 것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20203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일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지]

초가을 바람이 아직은 덥다고 느껴지던 날, 도동사 뒤쪽 철륭할아버지 옆에 있는 복분자 밭에서 크게 라디오를 틀어 놓고 일을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노부부는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안에 있는 당산할머니 아래에서 마침 복분자를 따서 손수레에 싣고 오는 농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까맣게 잘 익은 복분자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리키며 얼마든지 먹으라고 권하던 인상도 좋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바로 그분들이었다.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오늘은 일하시기 좋은 날씨네요. 두 분이 다정스러워 보여요.”

“품삯 무서워서 둘이서 일할 때가 많아요.”

“하루 일당이 얼마나 되는데요?”

“한 사람 품삯이 하루에 3만 5000원이오.”

“비싼 편인가요?”

“품삯만 들어가는 게 아니오. 일은 밥 죽일라고 한다고, 하루 세끼 밥이며, 술이며 하면 한 사람에 5만 원은 들어요.”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영농비 중에서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한 해 복분자 농사를 지으면서 들어가는 품일을 계산해 주었다. 봄과 가을에 가지치기 할 때 각각 10여 명의 품을 사고, 또 복분자를 딸 때는 50여 명의 품을 사야 한다. 그래서 1000평[약 3306㎡] 정도 복분자나무를 심었는데, 1년에 70명 정도의 품을 사기 때문에 품삯으로 나가는 돈이 많다고 한다.

“마을 사람끼리 품앗이는 하지 않나요?”

“요즈음은 품앗이가 없어졌어요. 늙은이들만 있는데다 일할 사람이 적어서 현금으로 일당을 주어야 사람을 살 수 있어요.”

어느 농촌이나 겪고 있는 고령화와 일손 부족이 이 마을에서도 심각하게 느껴졌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해 주시던 할아버지가 잠시 일손을 멈추시더니 복분자 농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5년 동안 복분자를 심어 지금까지는 그래도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다는 말과 함께, 마치 책을 읽듯 복분자 농사에 대한 설명을 줄줄줄 해 준다.

[노력한 만큼 거두는 거야]

복분자나무는 1년에 비료를 여섯 번 주고, 농약은 두 번 친다. 그리고 가지치기는 두 번을 하고, 수확은 약 15일간에 걸쳐 하게 된다. 지금은 복분자를 다 따내고 나서 내년 농사를 위해 죽은 가지를 쳐내고 있다. 속이 비어 있는 복분자나무는 기후나 수분 등 생육 조건이 맞지 않으면 잘 죽는다. 죽은 가지에서는 복분자가 열리지도 않고 또 일하기도 성가시기 때문에 2월 말에서 3월 초에 걸쳐 가지치기를 한 번 해 주고, 또 수확이 끝나면 지금처럼 또 한 번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가장 일손이 많이 가는 것은 수확철이다. 복분자는 6월 20일경부터 수확을 시작해서 꼭 보름 정도 계속된다. 이때는 품을 사서 복분자를 딴다. 자식들은 외지에서 공직 생활을 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그래서 부부간에 주로 일을 하지만, 일손이 부족하므로 늘 남을 사서 복분자를 수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식들이 농사를 거들어 주지 않아도 매년 복분자로 술도 담그고 즙도 내서 자식들 몫을 따로 챙겨 주시지요?”

하고 필자가 묻자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복분자는 땅이 좋아야 해요. 물빠짐이 좋은 사질토라야 가지도 덜 죽고, 수확도 많이 해요. 특히 수확철에 비가 많이 오면 복분자 농사는 망쳐요.”

열매가 쉽게 떨어져 버리고 또 따더라도 당도가 떨어져 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분자를 수확할 때가 마침 장마가 시작하는 때라서 운이 따라야 한다며 하늘을 본다.

복분자는 2년생 가지부터 열린다. 금년에 새로 난 순을 잘 보호해야 내년에 복분자가 열리기 때문에 매우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대개 한 가지에서 6개 내지 7개 정도의 복분자가 달리는데, 한꺼번에 익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확철이 되면 거의 매일 익은 열매를 솎아 딴다.

꽃이 피고 나서 열매를 따기까지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5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꽃이 지면서 푸른색의 복분자가 맺힌다.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색깔이 바뀌어 가면서 열매가 커 가고, 익으면서는 까만색으로 바뀌게 된다.

복분자는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하는 식물이다. 또 열매가 맛있어서 잎도 맛있는지 충해가 심하다. 비료는 2월 말에 뿌려 주고, 다시 4월 중순과 5월 중순에 한 차례씩 더 준다. 수확이 끝나고 나서도 7월 초, 그리고 8월 중순과 9월 중순경에 각각 시비를 한다.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해서 농약을 살포하게 되는데, 열매가 맺기 전에 한 번, 그리고 열매를 따고 난 후에 한 번씩 한다. 사람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열매가 맺히면 농약 살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씩 강조한다.

복분자는 잘만 되면 고수익이 보장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부부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다. 작년부터 부인은 힘에 부친다고 복분자 농사를 그만 두자고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직은 일손을 놓고 싶지 않아 못들은 척하고 있단다.

그래도 요즈음은 복분자밭에서 일할 때 낄 전용 장갑이 나와서 복분자나무 가시에 찔리는 일이 덜하지만, 전에는 찔리고 할퀸 자국이 밤새 아리고 쓰려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복분자술의 검붉은 빛깔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장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면, 복분자는 불끈 솟는 힘의 원천인 자신의 열매를 그냥 줄 수 없어 넝쿨을 뻗어 가시밭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정보제공]

  • •  고남규(남,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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