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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 복분자마을의 첫인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20201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봄볕이 한가로운 3월 중순, 담쟁이넝쿨로 보아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옛 돌담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게 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어느 집 돌담 너머에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복사꽃이 함초롬히 피었고, 그 옆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시샘하듯 이른 봄 자태를 뽐낸다. 몇 발짝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당이 몹시 넓어 보이는 어느 집, 활짝 열려 있는 대문간 옆에 커다란 동백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어떤 시인이 논개의 입술보다 붉다고 했던 동백꽃이 피어 한창이었다. 마을에 오기 전에 잠깐 들렀던 고창 선운사 동백꽃이 연상되었다. 떨어진 동백꽃 하나를 주워 어린 시절처럼 꽁무니를 빨아 보면서 고창이 낳은 시인 서정주가 읊었던 「선운사 동구(洞口)」라는 시를 혼자서 웅얼거려 보았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작년에 피었다 진 동백꽃과 선운사 막걸릿집 늙은 여자의 목쉰 육자배기 소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이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

날씨는 포근하고 꽃은 피어 화사로운데 사람을 볼 수 없어 마을이 왠지 쓸쓸했다. 불현듯 골목길 끝에서 주막집 주모의 쉰 목소리를 닮은 인기척이 났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칠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빈집 옆 돌무더기 위에 앉아 말씀을 나누던 중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은 마당을 텃밭으로 일궈 복분자를 심어 놓았다. 복분자는 새순을 내기 위해서 잘 다듬어졌고, 그 아래로는 수북이 짚이 깔려 있었다.

“오늘 짚을 깔았어요, 할머니?”

“누구랑가? 첨 보는 사람 같네?”

묻는 말에 대답은 접어 두고, 누구라 할 것 없이 두 분이 거의 동시에 카메라를 맨 낯선 사람을 훑었다. 면식이 없는 터라 약간 경계를 하는 할머니들에게 신분이며 마을에 온 까닭이며 이러저러한 말을 한참이나 한 후에야 복분자 밭에 짚을 까는 일이 끝나고 새참을 사러 간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복분자 밭에 왜 짚을 이렇게 덮느냐고 묻자 할머니 한 분이 소상하게 설명을 해 준다.

“짚을 덮어 놓으면 풀도 잘 안 나서 좋고, 일할 때 폭신하고, 또 거름도 되지라.”

그러자 옆에 계시던 다른 할머니가 말을 보탠다.

“땅이 항상 촉촉해서 좋고.”

그러니까 일석사조인 셈이었다. 담배를 즐긴다는 할머니 한 분에게 담배 한 대를 권하고 나서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다는 고색창연마을체험관으로 길을 잡았다.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다]

개항기 최익현 선생이 서당을 열었던 도동사 앞에 새로 지은 목조 건물이 보였다. 개관을 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지 현관 앞에는 군수며 여러 기관장들이 보낸 화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주머니 다섯 분이 한쪽에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어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체험관은 새로 지었나 보네요?”

그중에서도, 뒤에 알고 보니 마을 부녀회장 되신다는 아주머니 한 분이 체험관[면적 148㎡]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마을 땅에다가 군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지어서 그저께[2009년 3월 13일] 개관을 했고, 어제 도시에서 사람들이 버스 한 대로 와서 농촌 체험을 하고 오늘 오전에 갔는데, 음식이 남아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 나눠 먹고 지금 좀 쉬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벽에는 줄다리기며 달집태우기 등 금년 대보름 때 도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찍었던 체험 행사 사진을 잘 분류해서 붙여 놓았다. 화투놀이를 하는 옆에 앉아 있자니 우리 동네도 박사며 교수가 많이 나왔다는 자랑이며, 집안의 누구누구가 외지에 나가 크게 출세를 했는데 혹시 그런 이름 들어 본 적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아직 마을에 대해 별반 준비를 한 바가 없는 필자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대학에 잘 알고 지내는 공대 교수 누구누구가 이 마을 출신이며, 그 교수의 부인도 우리 대학 교수인데 잘 안다. 그리고 그 아버님이 국문학자로 유명하신 분인데 원광대학교에서 정년을 했다는 등, 필자가 알고 있는 마을 출신들에 대해 늘어놓았더니 금방 눈빛이 신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연락이 되어서 고복상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이 체험관으로 왔다. 필자에게 안주며 복분자주를 권하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고복상 위원장은 마을 이장을 지낸 적이 있어서 마을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체험관 운영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었다. 특히 2007년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하는 농촌전통테마마을에 선정되어 2008년부터는 복분자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말이며, 홈페이지[http://oldtown.go2vil.org]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분자 체험을 하러 마을을 방문하는 일이며, 그들이 마을에 왔을 때 운영하는 프로그램 등에 대한 설명이 세밀해 주었다. 2008년 10월부터 운영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도시 사람만 해서 총 750명이 넘는단다.

[고창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복분자지]

고복상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가평마을은 복분자를 재배하면서 마을 소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복분자에 비해 상당히 높은 값에 팔린다는 홍보성 멘트도 빼놓지 않았다. 체험관에도 복분자 주스와 복분자주를 전시 판매하고 있어서 두 병을 다소 싼값에 샀다.

원래 가평마을은 인근에 방등산[방장산이라고도 함]이 있어서 1년 내내 바람이 세차기 때문에 농사, 특히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특용 작물 재배는 엄두도 내 보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7~8년 전부터 복분자를 심어서 짭짤한 소득을 올리게 되었고, 더구나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라서 ‘고색창연’이란 브랜드로 농촌 체험관도 짓고 도시민들을 맞으면서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연락이 되었는지 고색창연테마마을 사무국장이 체험관으로 들어왔다. 마을의 문화유산해설사를 겸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무국장은 마을 생활은 물론 복분자 농사며 판로, 농촌 체험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복분자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필자가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줄 알고 「방등산가」에 대해 물어 왔다. 그거야 내 전공이니까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신라 말에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전국적으로 큰 산에 도적떼가 많았다 합니다. 방등산에도 도적떼가 들끓었대요. 도적떼들은 고창과 장성에서 양가집 규수들을 많이 잡아 갔는데, 잡혀 간 여인 중의 한 명이 자기 남편이 곧 와서 구해 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지은 노래가 「방등산가」라 합니다. 제목과 이야기는 『고려사』라는 책에 전하지만 가사는 전하지 않는 노래입니다.”

그 자료를 이메일로 보낼 테니 잘 인쇄해서 체험관 벽에 붙여 놓는 것도 마을의 자랑거리일 것이라는 말을 보탰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 그림으로 그려진 상세한 마을 지도를 다시 한 번 쭉 훑어보았더니 이제 전혀 낯선 마을이 아니었다. 복분자가 꽃필 무렵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맛있는 복분자주를 어서 마시고 싶어 자동차 페달을 깊숙이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정보제공]

  • •  한흥순(여,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주민)
  • •  고복상(남, 1941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주민,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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