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오인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31078
한자 吳仁正
영어공식명칭 Oh In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이병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00년연표보기 - 오인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124년 - 오인정 과거 3위로 급제, 원흥진판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136년 - 오인정 탐라구당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155년연표보기 - 오인정 사망
출생지 고창현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지도보기
부임|활동지 탐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고창
대표 관직 진의판관

[정의]

고려 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창(高敞). 할아버지는 고창 오씨 시조로 한림태학사를 지낸 오학린(吳學麟)이고, 아버지는 한림학사 오질(吳質)이다. 슬하에 오세공(吳世功), 오세문(吳世文), 오세재(吳世才) 삼형제를 두었다. 오세문은 승보시(陞補試)에 장원급제하여 세자를 가르치는 동각시학(東閣侍學)을 지냈고, 오세공과 오세재(吳世才)도 당대에 이름난 학자였다. 특히 오세재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김부식(金富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활동 사항]

오인정(吳仁正)은 1100년(숙종 5)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1124년(인종 2) 과거에 3위로 급제하여 원흥진판관(元興鎭判官)을 초임으로 벼슬길에 올랐고, 정사에 유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임기를 마치고 개경에 돌아왔으나 10년 동안 관직을 받지 못하자 몸소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하였다. 당시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하였다고 한다. 과거시험관으로 오인정을 합격시켰던 김부식이 오인정의 지조와 절개를 높이 사 탐라구당사(耽羅句當使)[탐라의 여러 업무를 전담하여 처결하는 관리]로 추천하여 1136년(인종 14)부터 1142년(인종 20)까지 제주도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익양군의 행정 실무를 맡아 보는 녹사(錄事)가 되었다. 다시 진(鎭)의 판관(判官)을 역임하던 중 병을 얻어 개경으로 돌아왔다가 55세인 1155년(의종 9) 사망하였다.

일본인 천지무태랑(天地茂太郞)이 1939년 5월 9일 개성 인근의 산에서 오인정의 묘지석을 발굴하여 조선총독부에 30원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오인정의 묘지석에는 ‘시대금(時大金) 정원(貞元) 3년[乙亥年] 8월’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1156년으로 오인정이 사망한 지 1년 후다.

[묘소]

오인정의 묘지석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