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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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堂-富者-金性洙- |
영어음역 | Myeongdang Ttaemune Buja Doen Gim Seongsu Jiban |
영어의미역 | Gim Sungsu Family Became Rich because of Auspicious Lan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은영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김성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당 때문에 부자 된 김성수 집안」은 근대에 실존했던 인물인 인촌 김성수(金性洙)[1891~1955]에 대한 인물담이다. 김성수는 동아일보사를 창립하고 고려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51년 대한민국의 제2대 부통령을 지낸 교육가·언론인·정치가이다. 그는 호남의 거부였던 김경중의 아들로서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고창에서는 조상이 묏자리를 잘 잡았기 때문에 김성수의 집안이 부유하고 부통령을 지낸 인물도 배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93년 박순호가 집필하고 고창군에서 발행한 『고창군구비문학대계』에 실려 있다. 이는 박순호가 1990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남흥동, 성내면 신림리, 신림면 무림리 등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수집·채록한 것이다.
김성수의 조상 중 한 명이 장성에서 머슴을 살았는데, 집주인이 묏자리를 잡으려고 지관을 불렀다. 그 머슴은 지관에게 갖은 정성을 다 하여 좋은 명당을 얻었고, 지관이 일러준 대로 그 자리에 묘를 쓰고는 그 집에서 나왔다. 그 후로 그는 부잣집의 사위가 되었고,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여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 집안에서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가 태어났고, 장성에는 김성수의 집안인 울산김씨의 중시조 묘역 선산이 잘 가꾸어져 있다.
「명당 때문에 부자 된 김성수 집안」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자리 획득 후에 발복’이다. 명당을 얻으면 운이 틔어서 복이 닥친다고 믿는 민간의 의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명당 때문에 부자 된 김성수 집안」도 명당에 묏자리를 잘 써서 집안이 흥성하고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었다는 명당 발복담(發福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