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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절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04
한자 莊節壇
영어음역 Jangjeoldan
영어의미역 Jangjeoldan Jangjeold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단비
건립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에 있는 김문기(金文起), 김영년(金永年), 김헌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단비.

[개설]

장절단은 원래 단종 때의 절신(節臣)인 김문기(金文起)와 임진왜란 때 창의한 김영년(金永年) 및 김헌을 기리기 위하여 1942년에 세운 사당이었는데, 지금은 사당 건물은 사라지고 단비만이 남아 있다. 김문기는 조선 세조 때에 순절(殉節)한 문신으로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이며, 본관은 김녕이다. 1426년(세종 8)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사간(司諫),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 함길도절제사(咸吉道節制使),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자헌대부(資憲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세조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이 되자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잡혔으나 고문에 굴복하지 않고 사육신과 함께 순절했다. 이때 아들인 거창현감 김현석도 살해되었다. 김문기영조 때 복관(復官)되었고 정조 때에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의금부사(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義禁府事),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에 증직되었고,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김영년은 임진왜란 때 창의한 선비로, 자는 경노(敬老), 호는 겁암(㤼岩), 본관은 김녕(金寧)으로, 충청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14세에 부안으로 이거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흥덕 남당(南塘)에서 창의하여 채홍국(蔡弘國),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등 92명의 의사(義士) 및 500여 명의 의병(義兵)과 함께 맹단(盟壇)을 쌓고 5개 항으로 혈맹(血盟)을 하고, 맹훈련을 한 뒤 출병하여 서해안을 사수함으로써 이웃 고을들을 안전하게 지켰다. 정유재란 때 이들과 함께 부안 호벌치(胡伐峙)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김헌은 임진왜란 때 창의한 선비로 자는 헌옥(憲玉), 호는 은암(隱巖)으로 김영년의 장자(長子)이다. 임진왜란 때에 아버지와 함께 창의하였고, 부안 호벌치 싸움에서 아버지가 왜적에 의해 죽자 이를 보고 더욱 분발해 왜적을 추격하여 죽이고, 그 간을 꺼내 씹어서 복수하였다고 전한다.

[위치]

장절단은 작약동 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새미터 마을로 가다 보면 길가에 위치해 있다.

[변천]

1942년에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원래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었는데, 허물어진 시기는 확실치 않다. 2010년 현재는 단비만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7.30 [참고문헌] 추가 호남절의록(1799) 추가
이용자 의견
김** 위의 사진은 장절단이 아니며 아래 주소로 들어 가 보시면 장절단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을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PostThumbnailView.nhn?blogId=donghyun2011&logNo=220800811849&categoryNo=10&parentCategoryNo=&from=menu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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