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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01
한자 新山祠
영어음역 Sinsansa
영어의미역 Sinsansa Shrin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71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978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716 지도보기
소유자 신천강씨 문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에 있는 강지연(康之淵), 강유(康旒), 강흔(康訢), 강기종(康起宗), 강귀중(康貴中), 강지수(康智水)를 향사하는 사당.

[개설]

신산사는 신천강씨(信川康氏)의 사우로, 강지연(康之淵), 강유(康旒), 강흔(康訢), 강기종(康起宗), 강귀중(康貴中), 강지수(康智水)를 향사하기 위하여 1978년에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지연은 고려 고종 때의 공신으로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고종 때에 강화도로 천도할 때 시중(侍中)으로 호종(扈從)하였고, 몽고의 난에 공을 세워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충렬왕 때에는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충숙왕 때 충렬(忠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강유는 조선 단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돈암(遯庵)이고, 강지연의 5대손이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고 1454년(단종 2)에 왜구가 제포에 침입하자 김종서의 천거로 제포병마수군절제사(薺浦兵馬水軍節制使)가 되어 왜구를 물리치고, 그 공적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단종이 손위(遜位)를 하자 벼슬을 버리고 영광(靈光) 고성리(固城里)에 은거하여 두문자정(杜門自靖)하면서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김시습, 원호(元昊) 등과 도의(道義)로 교유하였다.

강흔은 조선 선조 때 학자로 자는 구부(懼夫), 호는 장봉(莊峰)이고, 강유의 현손으로 1568년(선조 1)에 출생하였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6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추상(追喪)을 하고, 여묘살이를 하였다. 강항(康沆) 등과 도의(道義)로 강마(講磨)하여 학문이 깊었다. 이괄의 난에 신유일(辛惟一), 오전(吳晪) 등과 함께 의병을 모아 근왕(勤王)하려다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양곡을 관가에 바치고 돌아왔다. 뒤에 이러한 공으로 호군(護軍)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연로하여 아들 강기종(康起宗)으로 하여금 창의(倡義)하게 하였다.

강기종은 병자호란 때의 의사(義士)로, 자는 자술(子述), 호는 호은(湖隱)이며, 강흔의 아들로 1610년(광해 2)에 출생하였다.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병학(兵學)에 밝았으며, 병자호란 때에 가동(家僮)을 이끌고 양곡을 내어 이흥발(李興渤)과 합군(合軍)하였다. 청주에 이르러 화의(和議)가 성립되었음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와 송림산(松林山)에 초막을 지어 은거하였다. 산 위에 단을 쌓아 망배통곡(望拜痛哭)을 하고 비분강개하였다. 행의(行義)로써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제수되었고, 병자호란 때의 일로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다.

강귀중은 조선 후기 효자로, 자는 이집(而執), 호는 시암(時庵)이고, 강유의 6대손으로 1574년(선조 7)에 출생하였다.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봉양에 지성을 다하였으며, 모친이 병에 걸려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16년을 연명하게 하였으며, 상을 당해서는 아우 강귀용(康貴庸)에게 궤연(几筵)을 받들게 하고 홀로 여묘(廬墓)하자, 사람들이 강효자(康孝子) 시묘동(侍墓洞)이라고 하였다. 뒤에 다시 부친의 묘에 여묘하여 추복(追服) 3년을 하였다.

강지수는 조선 후기 효자로, 자는 체오(體吾), 호는 인천(仁川)이고 강유의 7세손이다. 오익창(吳益昌), 이담(李譚)의 문인으로 조부가 임진왜란 때에 순절하자 아버지 강귀생(康貴生)이 통한으로 병을 얻어 10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상을 치르는 것을 성인과 같이 하였고 여묘살이를 했다. 복을 벗은 후에도 아침과 저녁으로 성분(省墳)하였는데, 하루는 산에 불이 나서 묘소를 범하자 호곡을 하니 바람결이 바뀌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문행(文行)이 높았고 성단(聖壇)에 은행나무를 심어 그곳에서 강학(講學)하여 이름을 날렸다.

[위치]

신산사는 신산마을 아래뜸 마을 북쪽으로 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변천]

1978년에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기와건물이고, 강당, 제관실, 내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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