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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184
한자 玄谷精舍
영어음역 Hyeongokjeongsa
영어의미역 Shrine of Hyeongok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333[주곡1길 68-3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형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333[주곡1길 68-34]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7호
문화재 지정일 1974년 9월 27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 있는 유영선(柳永善)이 건립한 일제 강점기 정사.

[변천]

현곡정사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1893~1961]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곡정사가 건립되기 이전, 유영선의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이곳에서 1년 정도 강학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유영선이 스승을 계승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24년에 건립하였다. 1936년에는 현곡정사 앞에 판경당(辦敬堂)을 세웠고, 1956년에는 서북쪽 가장 높은 곳에 용암사(龍巖祠)를 세워 전우의 진영을 봉안하였고, 지금은 유영선의 영정과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형태]

현곡정사는 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의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옆면에서 볼 때 팔자형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마루방·방·대청·건넌방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넌방 뒤에는 작은 골방이 있다. 누마루와 같이 바닥면을 높게 구성한 마루방 앞면에는 ‘상지헌(尙志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나머지 실(室) 앞에는 모두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고, 집의 양측에도 각각 쪽마루를 놓아 출입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정면 5칸인 전후퇴집 구조의 판경당에는 왼쪽부터 두 칸의 방과 대청, 그리고 한 칸의 방이 있는데, 후대에 이 건물 사면에 툇기둥을 세우고 가적지붕처럼 퇴를 달아냈다.

정사와 같은 축선상으로 판경대가 낮게 자리하고 있다. 외벌대 기단 위에 정성을 들여 치석한 초석을 놓았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소로수장집의 건실한 모습이다. 정사 서북쪽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우 용암사는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용암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이다. 사우 아래에는 장서각(藏書閣)과 낙영당(樂英堂)이 있다.

[현황]

현곡정사전우유영선의 영정과 위패가 있고, 관리사와 벽돌조의 장서각이 있다. 장서각에는 유영선이 저술한 책과 가문에서 보존하고 있는 2만여 권의 장서 및 유품이 있다.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유영선이 고창 지역에서 후학들을 훈도하며 유학 사상을 고취한 업적과 함께 그의 우국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이동학 현곡정사가 현곡 유영선이 건립하였다고 나와있는데, 고창군 문화관광과 문화재청에는 현곡 유영선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건립하였다고 나와있습니다. 어느것이 맞는건가요? (현곡 유영선이 세웠는지, 아니면 후학들이 세웠는지 불분명해서요...)
  • 답변
  •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문의 사항을 검토하였습니다.
    유영선의 문집인 <현곡집>에는 「현곡정사원운(玄谷精舍原韻)」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이 시는 현곡정사 설립 후 유영선이 자신의 심정을 표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영선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도 현곡정사의 건립자를 유영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현곡정사의 건립은 유영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앞으로도 디지털고창문화대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7.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