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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900
한자 李逢春
영어음역 Yi Bongchun
이칭/별칭 병서(秉緖),송암(松岩)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634[나성로 550-1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 운동가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634[나성로 550-11]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5년 11월 19일연표보기
몰년 1976년 12월 19일연표보기
본관 함평
대표경력 대한청년단 고창군단장|목포곡물조합장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개설]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봉춘(逢春), 휘는 병서(秉緖), 호는 송암(松巖)이다. 1905년 1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634번지[나성로 550-11]에서 이유석(李儒碩)의 6녀 1남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봉춘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건국촉진대 고창지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6년 청년연맹 중앙부서에 가입하였고, 1947년 6월 23일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고창군민궐기대회에서 대회장으로 궐기사를 낭독하고 시가행진을 주도하였다. 또한 고창수리조합 설립을 주도하여 축조 지원금을 확보하였다. 1948년 전국 청년단이 통합될 때 대한청년단 고창군단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방위군 동원령에 의거하여 박창현(朴昌鉉)을 중심으로 동원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7월 20일 박창현이 무기를 휴대하고 이봉춘에게 고창금융조합 금고문을 열어서 돈을 줄 것을 명령하자 10만 원짜리 차용 증서를 받고 돈을 건네주었다. 이 일로 1953년 고창금융조합의 고발로 구속되었으나 무혐의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 목포에 안주하여 목포곡물조합의 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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