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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887
한자 吳時泳
영어음역 O Si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문병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학 접주|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
성별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오시영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동학사』를 쓴 오지영이 동생이다. 1893년 보은 집회 때 고창 접주로 활약하였다.

[활동사항]

오시영은 어려서 고창읍 고촌으로 이주했는데,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華仲)은, 사형의 위기에 몰린 접주들을 구하기 위해 오시영으로 하여금 동학 교도를 포함한 인근 주민 1,000여 명의 횃불 대오를 이끌고 무장 관아를 방문하여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을 비결이라 하여 내놓게 하는 등, 현감을 압박하여 옥에 갇힌 동학 교도들을 구출하게 했다. 이후 오시영은 1893년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 임형로(林亨老) 등과 함께 고창의 접주로 활동하였다.

오시영은 1894년 3월 봉기 때 오하영(吳河泳)과 임형로 형제 등과 함께 1,5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9월 봉기 때도 8,0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영광에서 봉기하였다가, 그 해 겨울 전라남도 영광의 민병대인 이현숙(李賢淑)에게 체포되어 관군에 넘겨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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