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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31
한자 裵仁基
영어음역 Bae Ingi
이칭/별칭 처인(處仁),야은(野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별
생년 1867년연표보기
몰년 1944년연표보기
본관 달성
대표경력 승정원좌승지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처인(處仁), 호는 야은(野隱)이다. 1867년(고종 4)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은암(隱巖) 배환영(裵煥榮)이다.

[활동사항]

배인기(裵仁基)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890년(고종 27) 송세헌(宋世憲)의 추천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1891년 사헌부감찰, 호조정랑에 제수되었다. 이후 벼슬이 승정원좌승지에 이르렀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최전구(崔銓九) 등과 함께 항의하는 소를 올렸으나 저지당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집 동쪽에 모옥(茅屋)을 지어, 좌측에 망북헌(望北軒), 우측에 망극헌(罔極軒)이라 이름 하여 임금을 사랑하고 어버이를 사모하는 뜻을 다했다. 고종이 죽자 집 뒤 바위 위에 단을 쌓고 통곡하니, 후세 사람들이 그 바위를 일러 읍궁암(泣弓巖)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단발령과 창씨개명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1944년에 죽자 전주 최학자로 불리던 최병심(崔秉心)이 묘비문을 지어 주었다.

[저술 및 작품]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학문에 전념하여 「성경론(誠敬論)」을 지었고, 만년에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 『야은당유고(野隱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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