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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697
한자 慶州崔氏
영어음역 Gyeongju Choessi
영어의미역 Gyeongju Cho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고수면 두평리|부안면 용산리|공음면 구암리
집성촌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공음면 구암리
입향시기/연도 1500년대|1800년대
성씨시조 최치원
입향시조 최구|최응시|최문회|최문세|최기순

[정의]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구·최응시·최문회·최문세·최기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경주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경주최씨는 충렬공파(忠烈公派), 문밀공파(文密公派)가 알려져 있다.

[입향경위]

경주최씨 고창군 입향조 최구(崔嶇)는 충렬공 최광위(崔光位)의 15대손으로 1570년(선조 3) 전라남도 장성에서 최홍립(崔弘立)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부 최후립(崔厚立)과 아버지 최홍립은 고경명(高敬命) 휘하에 들어가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최구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1594년(선조 27) 무장현 도산리[지금의 무장면 도곡리]로 가솔을 거느리고 피난 왔다가 정착하였다.

최응시(崔應時)는 문밀공 최제(崔堤)의 13대손으로 1577년(선조 10) 나주에서 통덕랑(通德郞) 최기륜(崔起崙)의 장남으로 태어나. 후학 양성을 위하여 공음면 군유리(群儒里)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최응시의 9대손 최후경(崔候慶)은 효성이 지극하여 선영을 잘 받들고 후손의 번창을 도모하고자 18세 되던 1822년(순조 22) 부안면 용산리로 이거하였다.

최문회(崔文會)는 충렬공 최광위의 15대손으로 1585년(선조 18) 태어났다. 옥과현감을 지내고 조용한 곳을 찾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통안리(通安里) 서우치(西牛峙)에 은거하다가 농토와 산수를 찾아 재 넘어 고수면 두평리 구암골[九岩谷]에 정착하였다. 최문세(崔文稅)는 충렬공 최광위의 15대손으로 선조 때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서 태어났다. 해남현감을 지내고 만년에 조용한 곳을 찾아 공음면 구암리 마래(馬來)에 정착하였다.

최기순(崔基順)은 충렬공 최광위의 24대손으로 1866년(고종 3)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곽동에서 최용환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생계가 어려워지자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25세 때인 1891년(고종 28) 공음면 두암리(斗岩里)에 정착하였다가 1913년 고창읍 읍내리로 이거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최구의 후손들이 무장면 도곡리에서 12대째 세거하고 있다. 최문회의 후손들이 고수면 두평리, 성송면 등지에 살고 있다. 최문세의 후손들이 공음면 구암리에 12대째 세거하고 있다. 최후경의 후손들이 부안면 용산리에 6대째 세거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경주최씨는 총 218가구에 589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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