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643
한자 頤齋亂藁
영어음역 Ijaenango
영어의미역 Collected Works of Ijae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9[조동길 35-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황윤석
저자 황윤석
편자 국학진흥연구사업추진위원회
간행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저술연도/일시 1738연표보기~1791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94~2004년
간행연도/일시 1994연표보기~2004년연표보기
권수 10권
책수 10책
사용활자 컴퓨터 활자본
가로 21.8㎝
세로 30.4㎝
표제 頤齋亂藁
간행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평해황씨 종손가[원본]
소장처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50[하오개로 323]|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9[조동길 35-2]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9월 20일연표보기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운학자(韻學者) 황윤석(黃胤錫)의 문집.

[개설]

황윤석[1729~1791]은 조선 후기의 운학자(韻學者)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월송외사(越松外史)이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당대의 실학 대가들로 알려진 정경순(鄭景淳), 김이안(金履安), 홍계희(洪啓禧), 신경준(申景濬), 홍대용(洪大容), 이가환(李家煥), 서명응(徐命膺), 조엄(趙曮) 등과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학문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저서로 『이재난고(頤齋亂藁)』 외에 『이재유고(頤齋遺稿)』, 『이수신편(理藪新編)』, 『이재속고(頤齋續藁)』 등이 있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111호 지정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이재난고』는 본래 황윤석이 직접 모필(毛筆)로 쓴 6천여 장의 일기체 형식의 초고이다. 이를 연월일차 순으로 편책(編冊)하여 총 57책으로 분철되어 있던 것을 1994년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하면서 52권까지를 적당한 분량으로 나누어 9책으로 제책하여 10년에 걸쳐 출판하였는데, 여기에 색인집을 붙여 총 10책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이재난고』는 그 방대한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책으로 간행된 사례가 있었다. 곧 1829년(순조 29)에 이재의 손자 이수경(李秀瓊)과 전라도관찰사 조인영(趙寅永)에 의해 12권 7책으로 된 『이재집(頤齋集)』이 간행되었고, 다시 13년 뒤인 1842년(헌종 2)에는 후손 황서구(黃瑞九)와 향유(鄕儒)들에 의해 14권 7책으로 된 『이재속고(頤齋續稿)』가 간행되었다. 광복 후 1975년에는 앞서의 두 간행본과 별쇄본인 『이수신편(理藪新編)』과 『자지록(資知錄)』, 『양금신보(梁琴新譜)』 등을 합하여 『이재전서(頤齋全書)』 3책으로 경인문화사에서 영인 출간되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이재난고』는 일기체의 초고 전체를 대상으로 했기에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초서(草書)로 된 원고를 탈초(脫草)하는 작업을 거치는 등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1994년 1책으로부터 시작하여 2003년 9책으로 간행 완료되었고, 다시 2004년에 색인집 1책이 덧붙여 출간되었다.

[서지적 상황]

『이재난고』 원본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9번지[조동길 35-2]의 평해황씨 종손가에 보존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994~2004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것이다.

[형태]

10권 10책의 컴퓨터 활자본이다. 표제는 ‘이재난고(頤齋亂藁)’이다. 양장본이며, 크기는 가로가 21.8㎝, 세로는 30.4㎝이다. 상하 2단으로 조판되었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의 간행사가 있고 이어서 범례와 목차, 이강오(李康五)의 해제를 붙였다. 1책부터 9책의 전반까지는 일기체의 원고 순서 그대로 수록되고, 하반에는 연보를 붙였다. 내용은, 연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월일 아래 그날 일어났던 일들을 자유롭게 기록하였는데, 저자가 10세부터 63세로 세상을 떠나기 2일 전까지 계속 기록하여 그 분량이 6천여 장에 이른다. 따라서 여느 학자들의 문집과 같이 기(記), 서(序), 발(拔) 등으로 편성된 체재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날그날의 학습 내용, 지은이가 지은 시문과 논설·기행문은 물론 견문한 것까지를 모두 기록하였다. 예컨대 기후의 변화, 농사의 풍흉과 지진, 일식, 월식은 물론이고, 당시의 풍속과 세태, 구입한 물건들의 가격과 품질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내용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재난고』는 외형상으로는 질서 없이 나열된 기록물로 보이나, 그 기록물 중에서 한 편 두 편 독립된 연구 저작물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수신편』, 『산뢰잡고(山雷雜攷)』, 『자지록』, 『역대운어(歷代韻語)』, 『성씨운휘(姓氏韻彙)』, 『성리대전주해(性理大全註解)』, 『구경잡록(九經雜錄)』, 『군서정변(群書訂辨)』, 『상위지요(象緯指要)』, 『여지승람증수기례(輿地勝覽增修起例)』, 『윤종기(輪鍾記)』,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 『해동이적보(海東異蹟補)』, 『소학강의(小學講義)』 외에도 여러 편이 있는데, 실로 백과전서적 저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내용면에서 분석해 보면, 우주 자연의 본체와 현상, 인간의 성명(性命)과 윤리 및 도덕, 정치, 경제, 언어, 문학, 예술, 물리, 수학, 철학, 과학에 이르는 모든 학문의 이론과 실상이 논술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재난고』는 조선 시대 문신·학자의 보편적인 시문집에 수록되는 글뿐만 아니라 천문·과학·수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박학주의적 학문 성과를 담고 있어 조선 후기의 실학적 학문 경향을 엿볼 수 있거니와, 영조·정조 시대의 사회와 사상, 문화와 민속, 정치와 제도 등 다방면에서 역사의 실상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