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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542
한자 冬湖里舊冬湖-
영어음역 Dongho-ri Gudongho Seondol
영어의미역 Menhir in Dongho-ri Gudongho Villag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마을
집필자 송화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선돌
양식 선돌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마을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마을에 있는 당산 선돌.

[개설]

마을의 당산 선돌은 마을 수호신과 풍수 비보 선돌로, 마을 공간에 세워지는 선돌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데, 동호리 구동호마을 선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자연선돌로서, 마을 수호신의 신체로 신앙되고 있다. 동호리 구동호마을 선돌은 다른 곳에 위치하는 당산 선돌과 달리 선돌에 생미역을 흰 무명천으로 감아놓는 전통이 있다.

[위치]

구동호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좌우에 할아버지 당산 선돌과 할머니 당산 선돌이 있으며, 마을 안쪽에 큰 당산과 작은 당산이 위치한다. 큰 당산은 마을 중앙에 있는 노인회관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천룡당산이라 부른다. 큰 당산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로서 매우 신령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은 당산은 선착장 쪽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의 선돌은 자연형의 선돌이다. 당산의 형태는 나무와 선돌이 한데 어우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나무는 팽나무이며 나무 앞에 크기가 높이 130㎝, 폭 90㎝ 정도의 선돌이 세워져 있다. 선돌에는 흰 무명천으로 생미역을 걸어놓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의례]

음력 섣달 스물 닷새부터 정월 초사흗날까지 마을 입구와 제관의 집, 당산나무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는데, 제의가 끝나면 걷어버린다. 지금은 당산제를 지내는데 엄격하지 않으나, 예전에는 마을에서 초사흗날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가다 애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초이튿날 저녁에는 제물을 장만하는데, 밥, 떡, 과일, 나물 등을 준비하여 백지에 조금씩 쌓아둔다. 이것을 세 개를 만들어 한꺼번에 석작[대나무로 만든 뚜껑이 있는 바구니]에 넣는다. 제의 시간이 되면 마을 청년들이 제관 집으로 일단 집결하여 풍물을 치면서 큰 당산으로 나아가는데, 그에 앞서 제관은 제물이 담긴 석작을 들고 큰 당산으로 나아간다.

제의는 당산나무 중간에 흰 광목천을 두르고 미역 한 가닥을 광목천에 걸쳐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백지에 싼 제물을 팽나무 밑을 파서 묻고, 풍물을 치며 돌아온다. 당산나무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절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또한 당산나무에 걸쳐놓은 미역과 흰 광목천은 썩을 때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예부터 해오던 것으로 그렇게 하면 좋기 때문이라 말한다.

할아버지 당산과 작은 당산에도 큰 당산과 마찬가지의 형식으로 제사를 모신다. 다만 할아버지 당산과 작은 당산에는 흰 광목천을 나무에 두르지 않고 선돌에 두르며, 미역도 선돌에 두른 광목천에 걸쳐놓는다. 예전에는 초사흗날 샘굿을 지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또한 보름날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줄을 잡다가 여자가 죽은 이후로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황]

할머니 당산 선돌과 할아버지 당산 선돌은 남쪽 방향의 팽나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할아버지 당산 선돌에는 시멘트 블록으로 방형의 보호각 같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할머니 당산은 팽나무 아래 노천에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마을 당산 선돌의 선돌 신체에 생미역을 감아놓는 사례는 동호리 구동호마을 선돌의 특징이다. 이러한 사례는 구동호마을의 주민들에게서 유래가 명확하게 채집되지 않고 있다. 해안 지역의 마을 당산이라서 미역을 흰 무명천으로 묶어놓는 사례는 고창 지역 외에 다른 해안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바닷길을 따라 먼 지역에서 구동호마을로 전래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미역제를 지내는 마을 문화가 구동호마을에 전래되다가 정착한 사례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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