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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77
한자 女性運動
영어음역 Yeoseong Undong
영어의미역 Women's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순철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 여성들의 권리와 지위 확립을 위해 벌인 사회운동.

[활동 내용]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두드러진 여성 운동은 없다. 다만 종교 단체, 특히 기독교 단체와 안식일교회 등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개설하여 여성 계몽에 앞장서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야학은 공립보통학교나 사립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이나 학비 마련이 어려운 처지의 빈한한 청소년들을 모아 뜻있는 인사들이 교육을 시키던 곳이다.

개신교에서 세운 고창여자야학은 1921년 8월 4일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예배당 내에 야학회를 열고 40여 명의 여자를 교육했다. 과목은 조선어와 한문, 산술 그리고 습자 등이었다. 이 같은 여자 야학은 인근 지역인 정읍과 김제·부안 지역 중에서는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이었다. 한편, 1922년 무장안식일교회에서도 진명여자학원을 설립하였다. 진명여자학원은 6년제의 보통학교로 운영됐는데, 교육 내용이 충실하여 남녀 공학의 공립보통학교보다 지원자가 많았다.

1925년 고창읍 읍내리에 세운 고창부녀야학은 여성 청년 회원들이 발기하여 운영하던 곳이다. 곽기선(郭基宣)과 정기환(鄭琪煥)이 조선어와 수신·일어·산술 등을 가르쳤다. 이후 개신교에서 1927년 고창부녀야학이란 이름으로 다시 고창읍 읍내리에 야학을 개설했는데, 윤형숙(尹亨淑)이 무보수로 가르쳤다. 고창부녀야학에서는 고창유치원도 운영하였다고 전한다. 1921년 무장면에 설립되었던 무장부인야학은 신애세 등 12명이 설립하였다는 기록만 있을 뿐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고창 지역 야학 가운데 신씨 가문의 서당계에서 1923년에 만든 신천리여자야학은 주목할 만하다. 보통, 야학은 지역의 유지나 개인, 청년 단체, 노동 단체, 노동자들이 설립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천리여자야학은 특정 가문의 ‘계모임’에서 야학의 경비를 조달하고 설립의 주체가 된 점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여성 야학의 교육 내용]

고창 지역에서 운영되던 야학의 주된 교과목은 조선어와 한문이었으나, 일어와 산술을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당시 조선어와 일어, 산술 교과는 모두 일제 측의 인가가 나 있는 교과서들이었다. 일제는 이들 교과서를 서당에서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 즉, 1918년 2월 21일 발포된 「서당 규칙 발포에 관한 건」 제4조에서는 “서당에서 교수할 수 있는 교과서를 지정하고, 그 외의 발매령 금지, 기타 불량 서적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러한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함양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한편, 일부 야학의 교과목에 포함된 수신 과목은 일본의 국민윤리 교과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육칙어, 천황, 황실, 신궁, 황국신민, 국헌, 국법, 일본의 국민 도덕, 충군애국, 신도, 무사도, 일본의 축제일 등 일본의 천황제 교육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함으로써 한국인들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같이 일제의 동화 교육에 이용되는 교과목을 야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것은 야학에 대한 일제의 탄압에 기인한 결과로 보인다. 산술이나 습자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 택해진 교과목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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