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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죽고서야 광 열쇠 받았어라우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304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복 입고 시집가서 층층시하 시집살이]

“종가집이지. 질 큰집. 우리 집서 다 뻗어 나가서, 칠대, 팔대까지 나왔어. 한 정지서[부엌에서] 팔대까지 나갔은게.”

한양조씨 종부인 주광순[1924년생] 씨는 택호가 ‘난산댁’이다.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던 1942년에 스물일곱 살의 한양조씨 8대 종손 조태형 씨와 결혼하였다. 혼인할 당시 신랑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고 3년상이 다 끝나기도 전에 종중 어른들이 종손이 저리 나이가 들도록 장가를 못 들어서 큰일 났다고 성화를 해서 상중에 혼례를 올린 것이다.

“[신랑이] 복 입고 장개 왔대, 장개 왔어. 3년 들[덜] 넘어 갔는디……. 큰집이라고. 종중할아버지들이 일부러 막, 돈, 그냥, 중신애비 돈 몽땅 줌서. 막 여왔대[결혼시켰대]. 큰집이, 저, 큰손지가 늙어서 큰일 났다고. 나이 많아서 큰일 났다고. 그 집으로 제사 지내러 간디. 늙디 늙은 저 질부가 밥 허고 댕기고. 젊은 각시 없은게 못쓰고 큰일 났다 험서.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들이, 종중할아버지들이 서둘러서 여와 줬대.”

상중에 올린 혼인이다 보니 주광순 씨는 새신부가 꽃단장은커녕 상복을 입고 시댁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참으로 한심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은 참을 만했다. 시집간 날부터 층층시하 어른들에,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시작됐던 것이다.

“할아버지들, 맨~ 할배. 할아버지가 닛[넷]인가 다섯인가 돼 가지고. 할매가 닛인가 다섯인가 되야. 집안이. 지사[제사] 지내믄, 그냥, 하나씨들이[할아버지들이] 방으로 하~나 앉었어. 새각시들은 방 천신도 못 허고, 나와 구들에 앉었고. 부뚜막에 쭉 앉어서 뭣 얻어먹고. 시집살이는 시어마니가 거시기, 주청이 있은게로 삭망 때마다 상을 받아 논디, 보름상 놀 때 안 운다고. 절만 허고 나믄, ‘절만 허믄 뭔 대수냐? 곡[哭], 곡, 곡[을] 히야지. 아이고, 아이고 곡 히야지.’ 보도 안 헌 사람 보고도 다, 복 입으라고. 옷도 곱게도 못 입게 허고. 생인[喪人]이라. 옷 곱게 입으믄 못 쓴다고. 보름 때 삭망 지내고. 초하루 때 삭망 지내고. 한 달에 두 번쓱. 상복 치매[치마]가 늘 빨아서 입은게, 다 떨어져 부러. 삼베가 다 떨어져 부러.”

돌아가신 시아버지 주청에 삭망 때마다 음식을 올리면서 곡을 하지 않는다고 야단이었고, 옷도 곱게 입지도 못하게 해서 매일 입는 상복도 힘이 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시어머니가 쥐고 있는 광 열쇠 때문이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며느리에게 넘겨주지 않았던 광 열쇠만 생각하면 주광순 씨는 지금도 설움이 치민다.

[배고픈 게 제일 서럽지]

시어머니는 평생 며느리에게 광 열쇠를 주지 않고 끼니때면 당신이 직접 쌀을 내서 며느리인 자신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밥을 풀 때도 시어머니가 직접 그릇에 담았는데, 식구들 밥을 다 담고 남은 밥은 큰 그릇에 담아 안방의 시렁에 올려 두고 며느리에게는 누른 밥만 조금씩 주었다고 한다.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큰 설움인데, 남도 아니고 며느리인 자신에게 그리 인색하게 구는 시어머니가 주광순 씨는 그리 좋을 수는 없었다.

“밥 헐 때도 꼭~ 양석[양식]도 내 주고. 내 맘대로 떠다 허도 못 허고. 밥 히[해] 노믄[놓으면], 밥 풀 때는 시어마니가 다 밥도 푸고. 며느리 밥은 주걱으로 딱 긁어서 깎어 버리고. 밥 남으믄 퍼 갖고 방으로 갖고 가서 방 선반에 얹어 놓고. 더 먹을께미[먹을까 봐]. 누른 밥이나 먹으믄 배 부르다고, 딱 긁어서 쬐께 주고. 시어마니가 다 채려서 주는 거여. [시어머니가] 어디 갈라 해도, 갖다 며칠 만에 오는 놈, 딱 내 놓고 가. 쌀도. 광에다가 문 딱 잠그고.”

모진 시집살이에 종가집이라 명절이면 사흘을 세배꾼들 대접하고 나면 다리에 알이 배서 일어서 있기도 힘이 든 세월을 살아온 종부 주광순 씨. 그러면서도 옛날에는 다 그리 살았다고, 너나없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크게 힘든 삶도 아니었노라고 위안 삼는 할머니. 그녀의 삶이 바로 우리들의 과거였다.

“길쌈도 다 히서, 베만 세빠지게 짜고. 밤나 일해도 [시어머니가] 보신[버선] 한 짝 안 해줘. 이만치나 가세로 기우고 남으면은 이런 보신 쥐어[기워] 신으라고 줘. 쥐어 신으라고. 그것도 안 줘, 그것도 뭉차서[뭉쳐서] 당신 방에다 넣어서 문 딱 잠가불고. 다~ 그려 다. 다들. 다 그러고 살았어. 옛날 다 그러고 시집살이 허고 살았어. 시아바지 없고, 작은 며느리들이, 작은 며느리도, 혼자, 시어마니 없고 신랑하고 산 사람이 멋대로 살고. 시어마니, 시아버지 데리고 산 사람은 고상 디지게들 하고.”

[정보제공]

  • •  주광순(여, 1924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택호 난산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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