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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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喆 |
이칭/별칭 | 주철(周喆),혜백(惠伯),정의(靖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종준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묘가 있던 조선 후기 무신.
[개설]
이주철(李周喆)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형조판서와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주철(周喆), 자는 혜백(惠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에 묘역이 있는 이순제(李舜濟)이고, 할아버지는 좌참찬으로 추증된 이동찬(李東粲), 아버지는 좌참찬에 추증된 이사겸(李思謙)이다. 아들이 병조참판을 지낸 이방현(李邦鉉)이다.
[활동 사항]
이주철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난초를 그려 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으면서 군사에 대한 권한이 종실에게 집중되었는데 당시 이주철이 우포도대장이 되었다.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주철은 영건도감(營建都監)의 제조(提調)로 활동하였고, 계속해서 총융사와 금위대장, 공조판서 등을 맡으면서 경복궁을 중건하는 일을 감독하였다. 1866년 프랑스가 일으킨 병인양요 때에는 형조판서로서 금위대장을 겸임하면서 대응책을 세웠고, 1871년(고종 8) 미국과 충돌한 신미양요 때에는 한성부판윤과 총융사를 지내며 강화도 방비를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高宗)이 친정을 하면서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아 경상남도의 고성읍(固城邑)을 옮기기도 하였다. 그 뒤로도 형조와 공조의 판서를 지냈다. 이주철의 벼슬이 높아지면서 이순제 등 조상 3대가 법전에 의거해서 추증되었으며, 교지 등의 고문서 다수를 후손들이 보존하고 있다.
[묘소]
이주철의 묘는 원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었는데 1971년 남서울컨트리클럽 부지에 편입되어 경기도 광주시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