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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 그녀는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성남이 개발될 것이라는 정보를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는 보따리를 싸게 했다. 성남과의 느닷없는 인연이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노씨 아줌마는 아직도 아버지의 정보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출처조차 확실치 않는 정보에 의지해서 그녀의 가족은 1968년 무렵 성남으로 이주해 왔다. 그녀 나이 9살 무렵이었다. 아버지 대신 엄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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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는 그냥 집안일만 했다. 하지만 삶의 목표를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주위 할머니들을 도와 심심풀이 삼아 도라지 까기를 시작했다. 상대원시장 상인에게서 도라지를 받아다가 한 양푼씩 까면 그 때 돈으로 1000원을 받았다. 1986년 즈음해서 우연히 지퍼 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389단지의 쓰러져 가는 허름한 2층 기와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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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기계라고 했다. 하도매기계라고도 했다. 그것은 배낭 같은데 구멍을 내고 조리개를 끼워 압착하는 기계였다. 잠바 같은 옷의 똑딱이 단추도 그 기계로 달았다. 노씨 아줌마의 부업이 본격화된 것은 또또기계가 집에 들어온 이후였다. “첨에 6개월 작업이 있으니까 고거 좀 해 줍사 하고 어떤 제안이 왔어요 저한테. 어떤 사장이지 말하자면 하청 사장이 그런 식으로 제의가 와 가지고, 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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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부모회는 가능한 전부 쫓아다녔다. 녹색어머니회 같은 교통 봉사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노씨 아줌마는 한 가지 원칙을 지켰다. 학기 초 임원 선출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활동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나름대로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굳게 믿었다. 치맛바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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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2007년 10월에 상대원을 떠나 현재의 성남동으로 이사했다. 이사 전까지는 부업을 계속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일복이 참 많았다. “진짜 수없이 밤낮없이 했어요. 어느 때는 새벽부터 일어나가지고 밥 간단하게 해주면서 애들 가기 전부터 시작을 해야 돼요. 그냥 뭐 몸빼바지 하나 주서 입고 허구헌 날, 그 시간대를 맞춰줘야 되니까 날짜를 맞춰줘야 되기 땜에.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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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요즘 들어 문득 문득 또또기계 소리가 그립다. 또또기계는 소리가 여간 시끄럽지 않은 기계였다. 겨울에는 문을 닫고 기계를 돌리니까 좀 덜 하지만, 여름이면 문을 열어야 했다. 그러면 다닥다닥 붙은 이웃집들은 분명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웃들은 불평을 하기보다, 외려 열심히 사는 게 좋다고 하였다. 주위에 살던 동갑나기 친구들은 함께 작업을 했다.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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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부업하는 사람들이 손 못 놓는 이유를 잘 안다. 또 텔레비전 프로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부업하는 달인 아줌마들이 왜 그렇게 손이 빠르고 정확해졌는지 잘 안다. 노력한 만큼 정확하게 들어오는 돈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20일 정도 한다면 될 거예요, 없을 땐 없고 있을 땐 있고 그러니까. 그러면 그게 보통 평균적으로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우리 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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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하대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지금의 대일초등학교 자리가 성남여중이었다. 그 전에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에서 살았다. 친정은 워낙 못 살았다. 거기다 아버지는 팔방 난봉꾼으로 전국을 안 다닌 데 없이 떠돌아 다녔다. 당연히 칠남매는 어머니 혼자 책임을 지셨다. 어머니가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성남으로 이주를 결정하신 것도, 시골에 땅 좀 있는 거 난봉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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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옆에 돌고래다방이 있었다. 노씨 아줌마는 주로 그곳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MP3 기기가 발에 채이는 요즘에는 다방에 가서 음악 감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그때는 음악 감상을 위해서 다방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걔는 박천마을에 나는 이천마을에 살았거든요. 그러면 우리집을 지나서 가야 하는데, 그 친구가 맨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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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삼영전자에서 2년 6개월을 근무하였다. 1년쯤 되었을 때 모범상을 탈 만큼 성실하게 일했고, 회사 생활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일하다 쉬는 시간이면 잔디밭에서 음악을 들으며 놀았다. 무엇보다도, 같이 일하던 7, 8명의 또래 친구들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들은 회사 밖에서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다들 집안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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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여러모로 노씨 아줌마에게 많이 기대고 있었다. 노씨 아줌마는 일찍 시집간 맏딸 대신이었다. 그녀 덕분에 어머니는 그나마 장사를 나다니며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씨 아줌마는 한 마디로 살림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를 일찍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다. 딸이 선을 보고 남자를 사귀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것이 벌써 시집갈 생각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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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의 하루는 집안에서 시작해서 집안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평범한 아주머니, 할머니, 그리고 앞집에 마주보고 살던 장애인 아주머니 정도가 대인 관계의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노씨 아줌마는 아들의 이름, 범구 엄마로 통했다. 그들은 부업을 같이 하는 동업자였고, 삶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였다. “할머니들이고 아줌마들이 우리집이가 사랑방 마치 그렇게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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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현재의 성남동으로 이사한 후 집에서 하던 또또기계 부업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집 밖에서 하는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상대원동이 더욱 그립다. “직장이라고 나가보니까 진짜 아침부터 늦게까지 가서 돈 백만원. 여자들 뭐 기술 없고, 그리고 또 나이를 먹다보니까 써주는 데도 없어요. 진짜 힘든 데 밖에 없고, 알바 식이예요. 일도 안 써줘요. 그래도 내가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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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강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꼼꼼하고 가정적이긴 했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노씨 아줌마는 좋아하지 않았다. 노씨 아줌마는 꿈도 많고 성격이 화통한 편이었다. 옆에서 밀어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번 밀어붙여 보라고 부추겨도 남편은 이리 재고 저리 재고하면서 평생을 직장에 매어 직장 생활을 했다. 부업을 해서 현금이 들어와도 노씨 아줌마는 기분 좋게 한 턱씩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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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구는 노씨 아줌마의 큰 아들이다. 남편 강씨는 성남 상대원동 구석에서 이름도 없이 살지만, 범구만은 넓은 세상에 나가 살길 바랬다. 다행히 범구는 깐깐하면서도 화통하고 남자다웠다. 자기를 더 많이 닮은 큰 아들을 보면 노씨 아줌마는 뿌듯했다. 아들 범구는 공군사관학교를 가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술 자국이 있어서 불가능했다. 한동안 방황하는 범구를 노씨 아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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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은 첫 발을 딛던 40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변했다. 철거민이 막 들어와 하꼬방 슬라브집에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 어제 같다. “제가 학교 다닐 무렵만 해도 시장 고쪽으로 개울 또 완전 산꼭대기고, 막 집이 듬성듬성 있고, 돌산이라고 그럴까 돌 있고, 덜렁 학교가 하나 지어 있었고 그랬었잖아요. 그때만 해도 물 사정도 안 좋고. 그래가지고 막 굉장했었어요, 청소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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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범구가 초등학교 3학년 되었나, 그 무렵에 분당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때 28평 아파트가 육칠천 갔었다. 그때 노씨 아줌마는 부업으로 벌어들인 꽤 큰 목돈을 쥐고 있어서 분당으로 이사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깝고 후회스럽다. 그때 그 일을 실행에 옮겼다면, 하는 말로 그때 그거 잡았다면, 노씨 아줌마의 인생길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