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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병치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40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노씨 아줌마는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부모회는 가능한 전부 쫓아다녔다. 녹색어머니회 같은 교통 봉사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노씨 아줌마는 한 가지 원칙을 지켰다. 학기 초 임원 선출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활동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나름대로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굳게 믿었다. 치맛바람 날리는 여느 학부모와 자신을 구별하는 방식이었다. 아무튼 자식만큼은 잘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런 덕분인지 큰놈 범구는 반장도 여러 차례 했다.

노씨 아줌마가 살면서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큰 아들이 아팠을 때였다. 늘 개근을 하던 범구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였다. 이곳 저곳 병원을 쫓아다녔는데, 병원마다 철분 결핍으로 인한 빈혈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제 내가 바쁘게 살다 보니까, 햄이니 뭐니 그런 걸 지네들이 좋아하는 거를 주로 많이 멕였지요. 인제 김치는 기본이지만은 간단하고 인스턴트 식품, 지네들이 좋아하니까, 그런 걸 많이 주고 그러다 보니까, 어딘가 모르게 제 생각인데, 그런 거 때문에 그랬나 싶은가. 하여튼 이유 없이 많이 아파서 또 마음적으로 많이 제가 안 좋았었어요. 부모로서 제대로 못해주고 그런 것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한 번 갈 때마다 16만 얼마씩 나오는 진찰비도 마다 않고 성남의 웬만한 병원은 다 가봤다. 병은 오래 갔다. 그녀가 바빠서, 시간 맞춰 작업을 끝내야 하니까, 남편 강씨가 병원을 쫓아다닌 적도 많았다.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미혼이었던 여동생이 병실을 지키기도 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눈도 허여멀건해서 그녀는 백혈병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큰 아들의 병은 혈관 질환으로, 혈관에 구멍이 나서 피가 흘러나오는 상태였고 약물 치료가 가능한 정도였다. 그 후 일 년 정도 약을 먹고 완치되었다.

큰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 장파열로 다시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아들은 잘 자랐고 공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느 어머니들처럼 아들에게 과외를 붙여주기도 했다. 서중학교를 마치고 성일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은 중학교에서처럼 반장이 되어 노씨 아줌마를 기쁘게 했다. 노씨 아줌마는 자신의 삶이 고생이라면 고생이지만 보람이라면 보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인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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