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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무장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로 생년월일은 알 수 없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손화중포의 접주로서 보은집회와 3월 봉기 및 9월 봉기에 참여하였다. 우금치 전투 때 전사하였다. 강경중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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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이름은 창주(昶柱)이다. 순택(舜澤)은 자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제량(高濟良)이다. 고순택은 일찍이 고창의 대표적인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이며 접주였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 고창 일대에서 송문수(宋文洙)·최경칠(崔敬七)·문덕중(文德仲)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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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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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태국이 정확하게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과 흥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태국은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무장, 흥덕 지역의 부농들로부터 전곡을 다수 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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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자범(子範), 별호(別號)는 병운(丙雲)이다. 1843년 무장현 하이면 고산[현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 장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이진(金以珍)이다. 김규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뒤 손화중(孫華仲) 포에 소속되어 동생 김천일(金千一)과 함께 활동하였다. 1894년 3월 20일 무장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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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운재(雲齋), 본명은 용수(容秀)이다. 수병(琇炳)은 자로, 또 다른 자는 수복(秀福)이다. 김해김씨 삼현파의 2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봉환(金鳳煥)이다. 186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김수병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며 의지가 굳어 주변 젊은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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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사익(士益)이다. 184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창강(金昌强)이다. 김양두는 1886년 무과에 입격하여 선전관을 지내는 등, 학식과 용모가 출중했다고 전한다. 과거에 합격한 양반 출신이지만 봉건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동학 농민 혁명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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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영심(永心)이다. 영달(永達)은 초명으로 호적에 오른 이름이다. 족보에는 달병(達炳)으로 되어 있다. 185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전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으로 녹훈된 김지남(金志南)의 10세손이다. 김영달은 어린 시절 원촌 사는 김흥섭(金興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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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김재명(金在明)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형량은 밝혀져 있지 않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농민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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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김준옥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고 전한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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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영암(榮庵), 본명은 흥관(興寬)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칠(金聲七)이다. 김흥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과 함께 동학에 입교(入敎)해 활동하였다. 김성칠은 1893년 12월,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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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났다. 문덕중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장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송문수(宋文洙), 고순택(高舜澤)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여 1894년 3월 20일 무장 기포와 백산 봉기에 관여하였다. 9월의 2차 동학 농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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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상삼(相三), 호는 남계(南溪)이다. 1864년 무장현 와공면 청천[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배후근(裵厚根)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배환정은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약을 무료로 주고 노부모를 모시는 환자에게는 약값을 반액만 받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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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189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은동에서 태어났다. 서상옥이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정확하게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 무리의 농민군을 이끌던 괴수로 평민을 침탈하고 재곡(財穀)을 빼앗기가 부지기수”였다는 관변 측 기록으로 미루어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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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성준(聖準), 호는 하은(河隱)이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삼산동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족질(族姪)이다. 손여옥은 손화중 포의 일원으로 주로 정읍과 고창에서 활동하였다.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함께 사발통문(沙鉢通文)에 서명한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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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대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정식(正植), 자는 화중(華仲)[또는 和中·化中), 호는 초산(楚山)이다. 1861년 정읍현 남일면 과교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과교동]에서 아버지 손호열(孫浩烈)과 어머니 평강채씨(平康蔡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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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185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송의호(宋義浩)와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찬은 1893년 동학 교단에서 신원 운동의 하나로 전개한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부터 무장 접주로 활약하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강경중(姜敬重)과 함께 1,300여 명의 동학 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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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동생 송경수(宋景洙)와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였다. 송문수는 대표적인 무장 지역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군 지도자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최경칠(崔敬七) 등과 함께 무장에서 봉기했고, 이후 9월 봉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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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가. 송민수(宋敏洙)는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하남리에서 살았으며, 북면 훈임(訓任)으로 신망을 받았다. 이화삼의 제의를 받고 1898년 12월 영학당 흥덕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2월 27일 밤 이화삼과 함께 당시 북면 중남당리·외남당리·하남당리, 동면 산양리·관정리·생근리 등 5~6개 마을 농민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일어나 28일 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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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신정옥은 고창 접주로 칭해졌던 인물로, 일찍이 동학에 입교하여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다만 9월 재봉기 이후의 행적만 확인되고 있다. 장성 유생의 기록에 의하면 10월 중순 이후 장성으로 내려와 개천과 단망 등지에 진을 쳤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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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명은 항영(恒永)인데, 공삼(公三)이라고도 불렸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엄흥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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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오시영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동학사』를 쓴 오지영이 동생이다. 1893년 보은 집회 때 고창 접주로 활약하였다. 오시영은 어려서 고창읍 고촌으로 이주했는데,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전봉준(全琫準)과 손화중(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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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원래 이름은 연도(然道), 이명(異名)은 용수(容洙)이다. 공선(公先)은 자로, 성오(星五)는 또 다른 자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면 금붕리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처남이다. 유공선은 손화중과 함께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갔다가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손화중과 함께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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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대성(大成)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영당리 소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윤록이다. 이문교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무장현 청해면 안산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로 이사했다가 다시 왕거마을로 옮겨 살았다. 이후 이문교는 외가 사람들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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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흥덕 농민 봉기 지도자. 이화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살면서,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농민 계몽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계모임과 같은 상호 부조적인 농민 조직 영학당을 이끌고 있었다. 1898년 이화삼은 이웃 마을 송관오의 장례식에 갔다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흥덕군수의 탐학에 군민의 원성이 높은 것을 알고, 이웃 외남당리 송민수(宋敏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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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이화서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 12월 이화삼(李化三)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흥덕 농민 봉기가 실패한 후, 이듬해 1899년 4월 최익서(崔益瑞)가 중심이 되어 정읍에서 재차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영학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읍의 입암면 왕심리에서 ‘벌외벌양(伐外伐洋)’을 표방하고 고부관아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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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초명은 문수(文洙), 본명은 종문(鍾文)이다. 천서(天瑞)는 자이다. 186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 석우촌에서 아버지 임석황(林錫璜)과 어머니 울산김씨(蔚山金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천서는 동학 농민 운동의 준비 단계부터 전봉준(全琫準)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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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생몰 연도와 정확한 탄생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같이 활동한 임천서(林天瑞)의 행적으로 미루어 1895년 동학 농민 혁명이 마무리되는 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형로는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농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고창 접주로 활동했고, 무장에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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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전막동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사점(沙店)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는데, 이는 아마도 후손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신분이 낮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899년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에 참가하여 4월 23일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의 알뫼 장터 싸움에서 체포된 뒤, 같은 날 27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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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자는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여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는데, 이 때문에 뒷날 녹두장군(綠豆將軍)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85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봉준은 어려서 전주 구미리[현 전라북도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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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휘는 근영(根永), 호는 진암(眞庵)이다. 백현(伯賢)은 자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태어났다. 정백현은 농민 봉기 와중에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도자급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백현은 1894년 3월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 전봉준(全琫準)의 처 칠촌으로 뒷날 전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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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관은 직산(稷山)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수월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재용은 월암리에 사는 임벽하(林碧河)의 천거로 정읍에 사는 접주 최익서(崔益瑞)를 통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1899년 4월 정읍 농민 봉기에 가담했다가 고창 수성군에 체포된 뒤 5월 2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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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조판용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정리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찍이 1899년 정읍 농민 봉기[일명 영학당 사건]를 주도한 최익서(崔益瑞)에게 천거되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접주로서 동학 농민 혁명이 좌절되자 동학의 재건을 추진하던 중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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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포(月浦), 본명은 귀환(貴煥)이다. 경칠(敬七)은 자이다. 1861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최경칠은 9척 장신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하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머슴의 등에 업혀서 서당에 다닐 정도로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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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최서중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이는 아마도 그의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아서일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 역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에서 고창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서중은 손화중 포의 기포장(起包將)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농민군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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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정읍 농민 봉기 지도자.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이름은 석일(錫一)·운일(雲一)·일서(一西), 자는 익서(益瑞)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임암면 만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영두(崔永斗)[1829~1899]도 동학 농민 혁명에 앞장섰다. 최익서는 고부 마항리(馬項里)[현 정읍시 이평면]에서 예수교를 빙자하여 영학당을 조직한 뒤 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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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최치홍(崔致洪)은 지금의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고종 36)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 농민 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18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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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천민 부대를 이끈 홍낙관(洪樂寬)의 동생이다. 홍계관은 1894년 3월 봉기 때 형 홍낙관과 함께 행동하였다. 당시 손화중(孫化仲) 포의 일원으로 고창에서 농민 혁명에 가담해 대성(大成) 수접주(首接主)로서 무장·백산·황룡촌·전주성 등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896년 8월에는 최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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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홍낙관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1850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제외하고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평소 호탕한 성격에 귀티가 흐르는 미남형이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고창읍 화산리에 사는 남양홍씨 집성촌을 찾아가 홍종운(洪鍾雲)[1844~1925]을 만나 후 동학 접주 유동근(劉東根)·유치호(劉致鎬) 등의 천거로 동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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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초명은 학모(學模), 호는 죽곡(竹谷)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에서 태어났다. 황채오는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농민 봉기를 계획하고, 송두호(宋斗浩)의 집에서 동지 20명과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발기하고 서명하였다. 사발통문의 내용은 첫째,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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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혁명군.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에서 태어났다. 황화성의 선대는 주변 10리 안팎의 땅을 소유한 지주였다고 한다. 황화성은 어려서부터 골격이 크고 장대했다고 전한다. 일찍이 집안 형님뻘 되는 황희성(黃熹性)과 같이 공음면 구내 출신 송문수(宋文洙) 휘하의 동학 농민군으로 들어갔다. 1894년 3월 20일 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