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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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새마을금고. 새마을금고는 주로 회원으로부터의 예탁금과 적금의 수입으로 조달한 자금을 회원에게 대출해 주는 신용 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당해 금고의 출자금 총액과 적립금 합계액의 범위 내에서 국가, 지방 자치 단체, 금융 기관 및 연합회로부터 차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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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새마을금고. 새마을금고는 주로 회원으로부터의 예탁금과 적금의 수입으로 조달한 자금을 회원에게 대출해 주는 신용 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당해 금고의 출자금 총액과 적립금 합계액의 범위 내에서 국가, 지방 자치 단체, 금융 기관 및 연합회로부터 차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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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보현(輔賢), 호는 만취(晩翠)이다. 1875년(고종 12) 5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미산(眉山) 성부(成溥)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서영일이다. 성경수(成卿修)는 어려서 가학(家學)을 계승하였다. 1890년(고종 27)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삼연(奇參衍)의 문하에 나아가 경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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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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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 있는 성사달(成士達), 성부(成溥), 성여원(成汝源), 성무조(成武祚), 성경수(成卿修)를 배향하는 일제 강점기 사당. 송양사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사우(祠宇)로, 성사달(成士達)을 주벽으로 하여, 성부(成溥), 성여원(成汝源), 성무조(成武祚), 성경수(成卿修)를 배향하고 있다. 성사달[?~1380]은 고려 공민왕 때의 공신으로, 본관은 창녕(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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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서(曺庶), 조의기(曺義起),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 사당. 정산사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사우(祠宇)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조서(曺庶)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의기(曺義起), 조선 후기의 효자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서의 자는 여중(汝衆), 호는 청간(淸澗)이고, 본관은 창녕으로 경기도 부천군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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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백거(伯據), 호는 흠재(欽齋)이다. 1873년(고종 10)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된 동오(東塢) 조의곤(曺毅坤)이고 아버지는 무우당(無憂堂) 조석휴이고 어머니는 탐진안씨 안기순의 딸이다. 아들은 조병후(曺秉厚)이다. 조덕승(曺悳承)은 4세 때부터 18세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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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정산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중(汝衆). 창녕 조씨 시조인 조계룡(曺繼龍)과 평장사(平章事) 조자기(曺自奇)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감(少監) 조준(曺俊)이고, 할아버지는 소감 조인취(曺仁取)이며, 아버지는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조원유(曺元宥)이다. 조서(曺庶)는 야은(壄隱) 전녹생(田祿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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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휴백(休伯), 호는 삼오당(三吾堂).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한빈(曺漢賓)이다. 조언징(曺彦徵)은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당대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의 시에 “상쾌한 숲과 샘[林泉]은 내게 가장 마땅하고 경서의 뜻풀이[經訓]와 농사 이야기[農談]는 내 분수에 마땅하네. 이 속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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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화암(花巖).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으로, 우승지 조후(曺厚)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호인(曺好仁)이다. 조익령(曺益齡)은 지략이 뛰어났으며, 충의를 자임하는 인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일상생활에 있어 ‘충신독경’(忠信篤敬)이란 네 글자를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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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오곡(梧谷).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호인(曺好仁)이다. 참봉 조익령(曺益齡)의 동생이다. 조익수(曺益壽)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조익령과 같이 군량미와 군기를 준비하고, 집에서 부리던 하인 18명과 함께 의병장 채홍국(蔡弘國)과 고덕붕(高德鵬)을 따라 흥덕 남당(南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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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은원(恩源),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조인준(曺仁俊)이다. 조첨(曺添)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곧으며 굳은 의지와 절개가 있었고, 밖으로는 연약한 듯하면서도 안으로는 강직했다. 어버이를 섬기되 정성을 다했고, 사람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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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혼부(混夫), 호는 계암(溪庵). 직제학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인숙(曺仁淑)이다. 조흡(曺潝)은 성품이 단아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신유일(辛惟一), 오전(吳晪), 유철견(柳鐵堅)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여 북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