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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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壤趙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수진 |
세거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3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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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3동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조춘(趙椿) |
입향시조 | 조계흥(趙繼興) |
[정의]
조춘(趙椿)을 시조로 하는 수정구 신흥동 샛고개에서 세거하던 성씨.
[연원]
평양조씨는 고려 말 원의 간섭기에 일약 명문으로 부상하였는데, 조인규(趙仁圭)[1227~1308]는 몽고어 통역관으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판도첨의사사(判都僉議司事)의 수상 자리에 오르고 딸이 세자빈이 될 정도로 출세하였다.
[입향경위]
조선 초의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조준(趙浚)의 아우 조견(趙狷)[1351~1425]의 5대손으로 부호군을 역임한 조계흥(趙繼興)[1534~1590]이 수정구 신흥동 샛고개[간현(間峴)]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세거지가 되었다.
[현황]
조계흥의 13대손인 조상호(趙相鎬)[1931년생]가 샛고개에 세거하여 왔다.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3동에 편입되었다.
[관련유적]
회천말 뒷골[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조견을 비롯한 평양조씨 묘역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