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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565
한자 文殊寺大雄殿
영어공식명칭 Daeungjeon Hall in Munsusa Temple
영어음역 Munsusa Daeungjeon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48[칠성길 13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목조 건축
양식 다포계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48[칠성길 135]지도보기
소유자 문수사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문화재 지정일 1974년 9월 29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문수사의 중심 전각.

[개설]

취령산 중턱에 있는 문수사는 644년(의자왕 4)에 자장율사가 세운 사찰이다. 당나라 청량산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자장율사는 꿈속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부처의 뜻을 깨닫고 귀국하였다. 우연히 은사리 지역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청량산과 비슷하여 머물러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이 땅에서 솟아올라 이곳에 문수도량을 설하였다고 한다. 문수사 입구에는 수령 100년~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단풍나무가 길 좌우에 늘어서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위치]

문수사 대웅전문수사에 남향으로 서 있으며, 대웅전의 동쪽 뒤편에는 문수전이 있다.

[변천]

문수사는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644년(의자왕 4)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1653년(효종 4) 성오대사(性悟大師)와 상유비구(尙裕比丘)가 중건하였고, 1764년(영조 40) 신화(信和)와 쾌영(快英) 두 화상(和尙)이 중창하였으나 퇴락하여 1834년(헌종 1) 우홍주지(宇弘住持)가 재건하였다 한다. 문수사 대웅전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1876년(고종 13)에 고창현감 김성로의 시주로 묵암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형태]

문수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정면은 3칸으로, 어칸[御間]에 4분합문을 달았고 좌우칸에 2분합문을 달았다. 대들보 머리는 귀면을 조각하였고, 정면의 외출목도리 밑에 활주를 설치하였다. 뒷면은 모두 흙벽이며 왼쪽 측면에는 띠살의 홑문을, 오른쪽 측면에는 띠살의 2분합문을 달아 출입이 가능토록 하였다.

활주는 높은 석재 초석 위에 세웠다. 창방은 기둥을 일자(一字)로 따고 끼워 넣었으며, 평방은 기둥 위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수법이지만 문수사 대웅전은 기둥 위쪽을 약간 파서 턱을 두고, 그곳에 얹어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에 따라 기둥에 힘이 가해져 기둥들에서 열극(裂隙) 현상이 나타나 있다.

맞배지붕이라서 좌우에 풍판을 달았으며, 좌우의 측면에 간포를 설치하였다. 평방이나 도리가 하나의 부재로 이루어지지 않고 각 칸마다 단재를 사용하고 있어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전후 좌우의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팔작지붕처럼 간포를 올려놓아 화려하다.

[현황]

각 기둥마다 큰 열극(裂隙)이 발생하였으며, 건물 뒷면의 절개지와 이격 거리가 좁고 절개지의 높이가 지붕보다 높아 전체적으로 습기를 함유하고 있다. 단청은 뇌록색 가칠 위에 문양을 시문한 것이 아니라 청색 계열을 사용하여 단청의 법식에 어긋난다. 1974년 9월 2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소규모의 건물인 문수사 대웅전을 구성한 출목수(出目數)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은 특이하며, 쇠서[牛舌]의 조각 수법도 건실하다. 또한 평방의 수법이 특이하여 이 지역에서 활약한 대목수의 기법이나, 건축 양식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