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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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민 음악. 고창군은 전라북도 서남단에 위치하며 전라남도 영광군과 장성군이 인접해 있다. 고창농악은 영광, 무장[고창], 장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무장 농악의 정통 계보를 잇는 농악이다. 또한 호남 우도 농악에 속하는 농악이다. 고창농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던 고창농악의 전성기는 1890년대와 해방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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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풍물굿 상쇠 명인. 김상구는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무장면의 당골[무당]로 활동하던 신현덕에게 피리 시나위와 굿거리를 배우고, 20세 때 박성근(朴成根)에게서 쇠를 배웠다. 26세 때 농구[상쇠의 제자]로 있었고, 끝쇠를 보다가 30여 세에 종쇠, 40세쯤에 상쇠를 했다. 당대의 상쇠들 중에서 박성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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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김성대는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두암마을 샘 위에 있었다. 아들은 김만엽으로, 충청도로 이주하였다. 김성대는 당골[무당]이자 두암마을 상쇠 명인으로 유명했다. 어려서 같이 활동했던 이중섭의 구술에 의하면 꽹과리 가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성근(朴成根)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굿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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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소고 명인.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장구 명인으로 알려진 김만식(金萬植)의 동생으로, 무계(巫系) 출신이다. 김양술은 박성근(朴成根), 신두옥, 신영찬, 김학준, 김성락, 김만식(金萬植), 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소고를 쳤다. 고창 지역에서는 이모질 다음으로 이름난 소고잽이로 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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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박성근은 190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태어났다. 쇠잽이 강성옥에게서 주로 쇠를 배웠고, 김성대에게 굿하는 법을 배웠다. 박성근은 특히 부포놀음에 매우 뛰어났고, 쇠가락뿐만 아니라 상쇠로서 굿판을 통솔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1900년대 이후 출생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 예인들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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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에 있는 풍물 단체. 아산면 성틀봉농악단은 2001년 제38회 전북도민체육대회 개막 공연에 참가하고자 설립되었다. 아산면민 체육대회와 아산면 축제에 참가하여 축하 공연을 하고, 농악단 연습실에서 연중 농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01년 제38회 전북도민체전 개막식에서 ‘고창의 소리’를 주제로 공연하였다. 2002년 제2회 고창농악경연대회 장려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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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무장(靈茂長) 농악의 ‘영무장’은 영광과 무장을 통칭하여 두 지역이 동일 문화권임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영무장으로 통합되는 권역은 좁은 의미에서의 영광과 무장이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두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의 장성, 함평 등지를 포괄하는 광역적인 명칭이다. 세습 무계 집단의 이념적 지향과 관련하여 동학 농민 혁명과 세습 무계 예인들이 구체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이들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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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고깔 소고춤 명인.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본명은 이모조이다. 1900년 초반 세습 무계(巫系) 집안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을 강모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모질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지역에서 가장 이름 난 고깔 소고잽이로 고창농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질은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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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우도농악 상쇠 명인. 전경환은 1921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 장성에 사는 상쇠 명인 최화집(崔化集)에게 쇠치는 법을 익히고, 20세 때는 고창군 성송면 남창리[현 성송면 하고리]에 사는 강성옥(姜聲玉)에게 배웠다. 또한 23세에 고창군 아산면 목동리 남촌에 사는 박성근(朴成根)에게 배우고, 33세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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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상쇠 명인. 정호풍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서 태어났으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풍어제·민요 편에서 영광·무장·장성농악[호남우도농악]의 두 갈래의 전승 계보 중 박귀바위·최화집·강성옥·정호풍·박성근(朴成根)·나덕복·전경환(全敬煥)으로 이어지는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로 조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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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농악패를 ‘기맹기패’라고 한다. 그리고 “농악을 친다”라거나 “풍물을 친다”고 하지 않고 “기맹기 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든 살이 넘은 최대근[1927년생] 씨에게 물었더니, “나도 뭔 말인지는 모르겄어.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모르제. 나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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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상쇠 명인. 황규언은 1920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양사동으로 이사한 뒤 15세 때부터 동네 어른들을 따라 다니며 매굿·풍장굿·당산굿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25세 때 고창의 유명한 굿패였던 박성근(朴成根)과 김만식(金萬植)패에 합류한 뒤 김만식에게는 장구 가락을 배우고,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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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소고 명인. 황재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풍물판을 따라다니면서 이모질에게서 엇박배기 동작을 배우는 등 이모질·김양술(金良述)·김오채 등과 소고를 쳤다. 이후 박성근(朴成根)·신영찬·신두억·김만식(金萬植)·김성락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24세 때인 1947년 정읍농악단 소속의 수벅고로 제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