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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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窯址 |
영어공식명칭 | Kiln Site |
영어의미역 | Kiln Site |
영어공식명칭 | Kiln Sit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성욱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에 전해오는 가마터.
[관련 기록]
순천 지역의 자기문화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와 읍지 등에 남아 있다. 조선 전기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국 320여 개소의 자기소(磁器所)와 도기소(陶器所)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 도기소와 자기소 지역에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릇들을 공납(貢納)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순천시에는 부의 북쪽에 자기소 1곳이 있으며, 도기소는 부의 북쪽 말촌(末村), 부의 동쪽 토진(吐津), 부의 남쪽 이포(梨浦)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자기소는 지명이 누락되었으나 갑발을 비롯하여 다양한 양질의 분청사기가 확인되고 있는 순천시 서면 지본리 가마터가 공납용 분청사기를 생산하였던 자기소로 추정된다. 『경국대전』에는 외공장으로 등록된 사기장이 전라도에서 가장 많은 6명이 배속되어 있어 조선시대 순천 지역의 도자 생산이 매우 왕성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경국대전』은 국가의 기본 법전으로 1471년(성종 2) 시행된 이후 조선 후기까지 큰 변화 없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순천 지역은 조선 중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40]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56] 토산조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지』에는 도기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1729]와 『순천부읍지(順天府邑誌)』[1786] 토산조에 자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19세기 작성된 『호남읍지(湖南邑誌)』에도 자기와 도기가 기재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자기가 순천 지역의 중요 물산으로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마터 조사 현황와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 현황]
순천 지역 가마터에 대한 발굴조사는 주암댐 수몰지구에 포함된 순천시 송광면 후곡리 884-1 일원의 백자 요지와 골프장 부지에 포함된 순천시 주암면 문길리 20-12 일원 백자 요지에 대해 실시하였다. 순천시 송광면 후곡리에서는 가마 1기를 비롯하여 수비공과 연토장, 건조장 등의 공방 시설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철화백자가 함께 확인되고 있으며 전형적인 오목굽과 굽이 높고 바닥이 좁으며 모래를 받친 오목굽이 함께 출토되고 있어 17세기 후반에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길리에서는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에 운영되었던 백자 가마 3기와 폐기장 3곳, 수비공 등의 공방이 확인되었다. 특히 3호 가마 폐기장에서 1679년(숙종 5) 진휼청(賑恤廳)에서 처음 주조하기 시작한 상평통보 당이전(當二錢)이 출토되어 1679년을 전후한 시기에 요업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원-광양 고속도로 공사를 시행하면서 순천시 서면 압곡리 건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시유도기[옹기] 요지 발굴조사가 시행되어 병과 주자, 단지, 호 등 비교적 소형의 저장용기를 제작하였던 가마 4기가 확인되었다.
순천시에 있는 가마터에 대한 지표조사는 1996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운영되었던 분청사기와 백자 요지 28개소를 확인하여 3개의 군집으로 구분하였다. 먼저 순천시 서면 써리바구산 주변의 요지군이다. 순천시 서면 써리바구산 주변은 북쪽에 있는 해발 625m 용계산의 한 지맥으로 5기의 분청사기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본리에 있는 2기의 요지는 갑발을 사용하여 양질의 고급 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15세기 전반 무렵부터 운영되었던 자기소 가마로 추정되며, 3기는 귀얄 분청사기가 확인되어 16세기까지 가마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황전면 백자 요지군으로 해발 624m의 별봉산 남쪽에 10기의 요지가 밀집되어 있다. 16세기 요지가 4기이며 나머지는 18세기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운영되었다. 다른 한 군은 송광면 일대의 백자 요지로 주암댐에 수몰된 요지를 합하면 모두 8기의 요지가 있는데, 특히 신흥리와 오봉리 일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신규로 3개의 가마터가 추가 확인되어 현재 32개소의 자기 가마가 파악되었다.
[출토 현황]
자기의 유형별로는 분청사기 6개소, 백자 25개소, 시유도기 1개소이며, 황학리 1호 요지의 경우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확인되고 있다. 고려시대 청자 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모두 조선시대에 운영된 요지이다. 시대별로 살펴보면 15~16세기에 운영된 가마가 10개소로 분청사기 요지 5개소, 백자 요지 5개소이다. 17~18세기는 13개소로 모두 백자 요지이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가마는 8개소로 백자 요지 7개소와 도기 요지 1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