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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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德厚 |
영어공식명칭 | Han Deok-hu |
이칭/별칭 | 근지(謹之),호암(湖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 자는 근지(謹之). 호는 호암(湖庵)이다. 아버지는 한종호(韓宗浩)이다. 증조부는 한진명(韓晉明)이고 조부는 한경상(韓慶相), 외조부는 이도천(李道天), 처부는 오명삼(吳命三)이다.
[활동사항]
1762년(영조 38)에 진사시에, 33세였던 1767년(영조 43)에 정시 문과 을과 1위로 급제하였다. 알성(謁聖)할 때 보인 제술 시험에서 차등(次等)하여 조사석(趙師錫), 이면(李沔), 이정(李炡), 김귀만(金龜萬) 등과 함께 직부회시(直赴會試)에 나아갔다. 사헌부지평으로서 최석항(崔錫恒)을 논죄하였고, 영조 2년에 장령이 되어서는 사간 이세진(李世璡)이 집의 박필주(朴弼周), 양득중(梁得中)의 비례(非禮)에 대한 상소에 대하여 논박하였다. 정언, 사간, 집의, 헌납을 역임하였다.
왜인 접위사(倭人接慰使) 및 진하 겸 사은서장관(陳賀兼謝恩書狀官)을 거쳐 의주부윤, 승지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