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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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好誠 |
영어공식명칭 | Jeong Ho-seong |
이칭/별칭 | 희일(希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희일(希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정윤희(丁胤禧)의 셋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정형(鄭衡)의 딸이다. 조부는 찬성과 관찰사를 지낸 충정공(忠貞公) 정응두(丁應斗)이고, 증조부는 찬성을 지낸 공안공(恭安公) 정옥형(丁玉亨)이다.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동료 유희량(柳希亮), 최성원(崔誠元) 등과 함께 팔도 열읍(列邑)의 향교와 모든 서원에 서찰을 보내어 정인홍(鄭仁弘)이 지은 『발남명집설(跋南溟集說)』을 비방하였다. 진주에서 일어난 음부(淫婦)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이암(李巖)과 절교하는 대목에서 나타난 남명선생여이구암절교사(南冥先生與李龜巖絶交事) 때문이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좌랑을 역임했다.
[묘소]
묘는 성남 수정구 상적동 의곡(義谷)에 있으며, 정원섭(丁元燮)이 찬한 비문이 있다.
[상훈과 추모]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