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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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永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승갑 |
[정의]
1912~?.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를 조직, 결성한 인물. 일명 영린(永潾)으로도 호칭되었다.
[생애]
정영배의 본적 및 거주지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138번지이고, 1912년 8월 29일에 출생하였다. 남한산노동공조회에 가입한 후 석혜환의 지도 아래 좌익서적을 읽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30년 가을 남한산노동공조회가 운영하는 야학교 교사가 되어 농촌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자전거 수선업에 종사하면서 활동하다가 1936년 25세에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였다.
[활동사항]
1935년 1월 31일 정영배는 석혜환, 김흥종 등과 함께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동지를 모으기로 결의하였다. 남한산노동공조회와 광주협동조합의 발전적 해체를 합의하여 2월 6일 비밀회의에서 광주공산당협의회라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영배는 “우리들 무산계급은 공고하게 단결을 기도하여, 근로 대중을 본위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죽을 각오로 매진하며 반역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조사선전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활동 방향과 단원 확보에 대해 논의하였다. 1936년 1월 분실된 문건이 경찰의 수중에 들어가 체포되었으며 1936년 4월 23일의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6년 5월 23일에 대전형무소로 이감 수용되었다가 1938년 6월에 가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