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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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喜涵 |
영어음역 | Lee Hee-ham |
이칭/별칭 | 자유(子有),귀천(歸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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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
성별 | 남 |
생년 | 1673년 |
몰년 | 1717년(숙종 43)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관직 | 옥천군수(沃川郡守) |
추증/추서 | 이조참판(吏曹參判)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자는 자유(子有)이고, 호는 귀천(歸川)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효정공(孝貞公) 이경증(李景曾)의 손자이자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이혜(李嵆)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익전(申翊全)의 딸이다. 이희유(李喜濡),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낸 이희담(李喜聃), 증 이조참의 이희남(李喜楠) 등이 그의 형들이다.
[활동사항]
1699년(숙종 25) 증광시(增廣試) 생원 진사 3등 41위로 급제하였고, 1703년 숭릉(崇陵) 참봉으로 관직에 나갔다. 문재가 뛰어나 직부회싀(直赴會試)하고 내섬시 봉사로 옮기었다. 1709년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 4월 평강(平康) 현감에 제수되어 외직으로 나갔으며, 1713년 공조정랑(工曹正郞), 1714년(숙종 40) 천안(天安) 군수(郡守)에 제수되었다. 이때 공조(工曹)에서 정릉(靖陵)의 석물을 개수하고자 유임을 요청해 도감낭청(都監郎廳)으로 임무를 마치고 이듬해 8월 옥천군수(玉川郡守)에 부임하였다. 1716년 병으로 파직을 요청하였다.
[추증]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보평[봇들]에 있다. 덕수이씨가 등자리에 살게 된 것은 조선초기 풍성군(豊城君) 이의번(李宜蕃)이 죽은 후 국가에서 사패지(賜牌地:외교와 국방 등에서 큰 공을 세운 왕족이나 벼슬아치에게 임금이 내려준 논밭)로 내려진 것에서 시작되었다.